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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던 것을 발견한 것이어서 정확한 설치 장소와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 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남서쪽 단벽은 도괴된 채 그 위에 흙이 덮여 있 었으므로 벽화의 훼손은 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립된 석실뜬 길이 235cm, 폭 9Ocm, 높이 80cm 규모이며 봉분 정상부에서 석실 상면부분까지는 깊이 410cm 정도 이다. 한편 석실내부에는 송판(잣나무)으로 된 관재가 부식된 채 가득히 채워져 있었고 관 재 사이로 유골이 일부 잔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용된 목관의 두께는 4.5cm이며 내외면을 검게 윷칠하고 그 위에 은색의 重圖文과 控字文을 외면애 가득히 시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관재에는 비단으로 보이는 붉은 명전 파편이 부착되어 있었다. 북동쪽 頭位에서 발견된 은수저 한벌은 수저 끝이 북동쪽 단벽끊 향하도록 간 지런히 놓여 있었고 이곳 석실 바깥에서 皇宋通寶 등 꽤錢 9점이 수습되었는데 본래의 위치가 아닌 도굴꾼에 의해 이동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목관편 사이에서 확인 된 유골은 찌없뼈展罪으로 身長은 168cm정도로 추측되었으나 門中의 건의를 받아드려 더 이상 세밀히 조사하는 것을 삼가하였다. 이 묘에서 석실 외에 주목을 끌었던 것은 誌石과 隨造의 발견이다. 註石은 남서쪽 단벽의 북서쪽 봉분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묘갱 내부에 석실을 안치하고 생토층 지면 높이까지 판축으로 석실 상부를 채운 다음 봉분 병풍석의 지대석을 사방에 배치하고 있는데 지석은 전면 지대석 내부에 깔린 판석으로 된 부석층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즉 지석은 지대석 전면과 나란하고 반듯하게 석함처럼 매납되어 있었는데 다행하게도 남 동쪽 도굴갱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이었으므로 훼실을 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 다 그리고 隨道 역시 분묘의 전면에 해당하는 남서쪽 단벽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 인되었다. 수도는 묘실 토갱과 같이 암반층을 남쪽으로 비스듬히 굴착한 장방형 토갱 인데 깊이는 석실 상면보다 약간 낮고 남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상면이 설치되어 있었 다. 내부 상변에는 할석편이 일정하게 깔리고 그 위에는 굴착한 암반 파편들을 채워 다진 형태이다 용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지만 석실을 조립한 뒤에 목관을 이곳 통 로를 이용하여 내부에 안장하는 횡구식 석실의 묘도와 같은 역할과 상변에 자갈을 일 정하게 채운 것을 감안하면 배수구 역할도 겸한 것으로 추측된다 석실 내부 조사시 목관을 안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벽화편에 목관 밑으로 밀린 흔적이 있눈 것으로 보아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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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壁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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