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page

來굶松i쫓隱士家 강陽門械洛花多 松‘찢 숨은 선비 집을 찾아오셨네, 석양에 문은 닫 혀 꽃은 지는데. 陣前問我~閔意 廳外춤山半面힘 술두루미 앞에 두고 나의 심정 묻노니, 발 밖의 저 청산이 내 마음이라오, (~松隱先生文集』 권 1, 詩, 엠圖隱, 松隱) 問君何휩쫓山歸 獨木殘花H했我衣 그대에게 묻노니 무슨 일로 산에서 사오, 외나무 지는 꽃잎만 내 옷 비치는데. f덩↑핫j;]외明遊若此 千年不死古來뼈 저승도 이승같이 이렇게 놀 수 있다면, 천년을 죽 지 않는 건 고래에 드문 일. (동상서, 附原, 國隱) 박익은 정몽주에게 준 시에서 ’술두루미 앞에서 나의 심정 묻는다’고 하였다 무엇을 물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지내온 날들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복직의 의향을 물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정몽주가 ‘무슨 일로 산에서 사오’라 표현한 데서도 짐 작할 수 있다. 정몽주가 언제쯤 밀양을 방문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기록상으로 보면 정몽주 는 공양왕대에 계속 관직에 있었기 때문에 밀양을 방문할 시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러나 방문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시기는 공양왕 2년 5월 윤이 · 이초사건이 발 생한 이후의 시기였을 것이다 특히 정몽주가 세력을 강화하여 이성계세력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하는 공양왕 3년 말 이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양왕 3년 11월에 들어 윤이 · 이초사건에 연루되었던 權빼和 등이 복직되고,45) 유배되었던 이색 · 이숭인 등이 소환되고 있다는 점에서,46) 이렇게 추정할 수 있다. 이 때에 정몽주는 이성계세력을 견제할만한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주변에 많은 인물들을 모으는 작업을 추진했던 것 으로 보이며, 평소 긴밀하게 교류하였던 박익도 그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섹도 밀양으로 박익을 방문했었다 다음의 시기47) 이를 말해준다 行尋石退到松離 花落찮衣更上蓋 돌길 찾아 걸어 솔 울타리 집에 이르니, 낙화는 옷싶에 쌓여 잔 위애 듣는구나. 45) r고려사』 권 46, 세가 46, 공양왕 3년년 11월 무자 46) 위의 책, 기해 47) li'松隱先生文集』 권 1, 詩, ~ft::J;:, 收|隱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