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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詩는 무인집권기 비판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t材흉이 당시 遊歷하면서 밀양 을 방문하여 목격한 것을 시로 표현한 ‘遊密州書事’의 일부이다. 임춘은 이 시에서 밀 양은 산이 많아 절경이라서 중국의 餘抗보다 빼어나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밀양은 지세가 영험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物塵이 풍부하기 때문에 도로가 사방으로는 이어지고 배와 수레가 모여들어 교역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위에 서 김종직이 밀양을 ‘동남의 한 都會’라 할만하다고 지적한 점과 비숫하다. 이같은 밀양의 지역적 특성은 자연히 수준높은 문화와 교육 환경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임춘의 시에서 ‘美風이 남아 있어 예의 밝은 고을’이라고 한 점이나, ‘선비들이 圍那처럼 많다’고 옮은 것은 이를 말해준다 밀양이 갖는 풍부한 물산은 주로 재지세력들이 차지였을 것이고, 이들은 이를 경제 적 기반으로 하여 교육과 문화의 창달에 매진했을 것으로 보인다. 倚者가 많다는 것은 이곳에 유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이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거나 관료로 활동하다가 낙향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곳의 유학교육은 향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6) 물론 당시 밀양 향 교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운 김해에 향교가 건립되어 있었던 것을 보면, 밀양에도 일찍부터 향교가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밀양의 재지세력은 이곳 향교를 중심으로 유교적 지식을 습득하고, 점차 과거에 응시하여 중앙 정계에서 관료 로 활동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밀양박씨 가문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박 익 이외에 『고려사』와 고려 훌훌농、銘, 그리고 『新增東國與地勝賢』 인물조에 수록되어 있 는 밀양박씨 인물을 찾아보면 다음 표와 같다. 6) 고려시대 향교에 대해서는 박찬수, 「고려시대의 향교」, 『한국사연구ι 42, 1983 참조. - 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