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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걸음마다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영. 삼도수군통제영은 충청도, 잔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곳으로 종2품의 관직인 삼군수군통제사를 두었다. 일지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 이순신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으며 전라좌수영은 통제영의 본영이 되었다. 이어 제2대 통제사는 원균, 제3대는 다시 이순신, 그리고 제4대는 이시언이 되었다. 1601년 이시언은 삼도수군통제영을 거제도 사배량에 있는 경상우수영으로 옮겼으며, 이후 통제영은 1895년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사령부 기능을 하였다. 통제이곳수군대첩비와 타루비. 고소동에 세워져 있는 이충무공대첩비(보물 제571호)는 높이 3.06m, 폭 1.24m로 충무공 관련 우리나라 최대의 대첩비이다. 이 비는 귀부, 비신, 이수의 세 부분을 잘 갖추고 있는데 비석 위쪽에 전서체로 『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고 새겨져 있다. 전라좌수사, 황해병사를 지낸 유형이 돌을 보내 김상용이 충무공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으며, 김현성이 새겼다. 끝부부에 『萬曆四十三年五月立』의 명문이 있어 광해군 7년(1615)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첩비 오른쪽에는 1603년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타무리(보물 1288호)가 있다. 최초의 충무공 사액 사당 충민사(忠愍祠).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3년 후, 1601년(선조34년) 우의정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현지시찰을 한 후, 통제사 이시언의 주관아래 건립된 이충무공 관련 최초의 사액사당으로 통영의 충렬사보다 62년,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먼저 건립되었다. 일제에 의해 1919년 강제 철거되었다가 1947년 지역 주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져 1993년 국가 사적 381호로 지정되었다. 여수 지역 유림과 주님들이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기 석채례를, 음력 9월 10일에 추기 석채례를, 4월 28일에 충무공 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