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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 - 길원옥 열세 살 평앙 나 그 때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전쟁이 남자가 나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내 인생을 그렇게 긴 어둠의 시간으로 덮어버릴 줄 몰랐습니다. 강악소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수 있는 돈 10원, 그 돈을 벌어서 아버지 나오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버지를 나오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어른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며 내 앞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강악소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 너무 아팠습니다. 내게 닥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소리치고, 구르고, 버팅기고.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구타와 고문과 감금이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로 견기기 너무 힘들어 "엄마, 엄마" 소리쳤습니다. 저 멀리 평양에 있을 내 엄마에게 내 통곡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1945년 7월 15일, 남들은 해방이랍니다. 남들은 그 추춘 겨울을 이겼더니 봄이 왔답니다. 남들은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났더니 빛이 비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겐 아버지 강악소 벌금 10원이 없었습니다. 다시 내겐 또 다른 어둠의 터널이 시작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내게 10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삼팔선에 가로막힌 휴전선은 다시 내 고향, 내 아버지를 빼앗아 가 버리고, 또 다시 전쟁이랍니다. 와~ 와~ 전쟁을 하랍니다. 무기를 사들이랍니다. 그것이 평화랍니다. 아니야!!!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이야!!! 휴전선에 새벽이 와야 비로소 아침이야!!! 비로소 평화야!!! 아~ 나비가 되어 날고 싶습니다. 아직 해방 받지 못한 이 몸. 늙은 몸이지만 헐헐 날아 고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휴전선이 가로 막은들 못가겠습니까? 철조망 가시덤불에 찢겨 내 몸뚱아리 피투성이 된들 못가겠습니까? 가는 길에 분단도 허물고, 휴전선 가시덤불도 걷어치우고 '휴전'을 '평화'로 '통일'로 만드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열세 살 이별 이후 생각만 해도 아프던 내 고향, 내 아버지 무덤가에 강악소 벌금 10원을 내어드리며 내 손으로 아버지 해방시켜 드리렵니다. 아~ 보입니다. 저기 저 보통강 가에 놓고 있는 열세 살 철부지 길원옥이가 식민지의 고통도 걷어치우고, '위안부'라는 아픈 굴레도 다 벗어버리고, 전쟁의 공포도 전혀 없이 평화롭게 친구들과 동네에서 고무줄 놀이 하고 있는 원옥이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