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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과 들불7열사 '70년대는 엄혹한 시대였습니다. 독재군부와 자본이 결탁하여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민중의 목을 조이고 몽둥이와 고문과 감옥으로 손발을 묶고 해고와 해직으로 무릎을 꿇게 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때 당시의 광주.전남지역의 지식인.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70년대 말이 되자 타지역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성장.발전하였고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 도한 타지역의 모범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농업지역일 뿐만 아니라 박정권의 지역편중 투자정책 때문에 변변한 공단이나 대기업 하나 없었던 광주.전남지역의 노동운동은 타지역에 비해 취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 광주의 영세공단지역이었던 광천동에서 이 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선구적인 소수의 젊은이들이 '78년 7월말에 노동운동의 토대를 강화하고 민중 생존권투쟁의 불길을 피워 올리기 위해, 그리고 현장활동을 통한 지식인과 민중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들불야학'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들불야학'은 문을 연 이후 활발한 교육활동을 해나가다 '80년의 5.18 민중항쟁과정에서 투사회보 제작.배포,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 주관, 항쟁지도부 구성, 5월 27일 새벽의 최후항쟁 등에 조직적, 주도적으로 참여한 결과 인명손실 등의 심대한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여 '81년 4월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광주.전남지역의 민족.민주운동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들불야학'이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겪은 재난과, 문을 닫은 이후로도 계속된 들불 관련자들의 수난은 놀라울 정도로 지속적이고도 결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문을 열었던 '78년부터 '98년까지의 20년 동안에 약속이라도 한 듯 훌쩍 우리들 곁을 떠나가신 들불야학 관련자들은 무려 일곱분이나 되었습니다. 박기순님은 불의의 사고로, 박관현님은 결사적인 옥중단식투쟁으로, 김영철님은 모진 고문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신영일님은 과로로, 박효선님은 병마와 싸우다가, 윤상원님과 박용준님은 5.18항쟁 당시 쿠테타군들과 총격전을 하다가 쓰러지셨습니다. 짧게는 21세에서 길게는 50세를 일기로 해서 일찍 떠나가신 그분들은 야학운동.노동운동.5.18민중항쟁 뿐만 아니라 주민운동.학생운동.청년운동.문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와 국면에 걸쳐 제각기 선구적.핵심적 지도적 역할을 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반역의 역사를 태우는 들불로 사시다 별빛으로 가신 님들은 영원히 우리들 곁에 계십니다. 200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