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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盧秉柱) / 당시 19세 / 건국포장 (돌산 군내 출신 / 1910. 8.30~1978. 8.15)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광주고보와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 충돌사건 후 투쟁을 주도함. 그해 11월 3일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열린 향후 행동지침 설정 집회에서 5학년 급장으로 사회를 맡아 가두시위 결정을 내리고 대오를 정비하여 교문을 박차고 나서 시위대열을 지휘함. 경찰의 제지에 불응하고 교가와 운동가 등을 외치며 행진을 계속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6월,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될 때까지 6개월여의 옥고를 치름.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발을 절며 지팡이에 의지했고,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진학도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