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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꾀 학살현장에서 권준욱 중대장과 크게 다투었던(3번째 항목i로) 당시‘동삼면 선무공작대장 윤인식(1.2대 도의원, 7.8.9.10대 국회의원)’씨의 증언은 삼애원 마루에서 하루동안 문구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여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교회의 장로이셨던 윤인식씨는 확인서를 날인하기 위해 가족 회를 거쳐서 가족들이 진실을 밝히는데 동의하므로 1997년 7월29일 날인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고, 정진재 씨가 유족회 회장이기에 그 분의 체면 때문도 있다고 하셨다. 1997년8월23일 함평읍에 거주하시는 ‘오정인’씨는 당시 월야 지서 경찰로 근무하시면서 겪었던 사항과 이계필 지서장과 함께 월야지서에 근무한 사실도 중언하여 주었고 월야면 정 산리 동촌마을과 장교, 남산꾀와 외치의 학살 사실도 중언해 주었다. 학살 현장에서 부상당하여 생존한 ‘정남숙’씨와 양채문‘씨의 증언도 2000년6월 19얼 확보하였다. 1950년11월 당시 11사단20연대 2대대 5중대 1소대 분대장 신분이었던 ‘황학준’씨는 2001년 11월26일 자신이 스스로 사 실확인서를 작성하여 유족회로 보내준 확인서에 신분을 밝히 며 학살로 희생된 ‘이재문’유족의 부모님 희생에 대해서 사실 을 밝혀 주기도 하였다. 이로써 당시 군인과 학살 현장에서 입회한 선무공작대장과 학살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유족과 경찰의 증언서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학살의 역사 증거로 보존 될 것이다.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