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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대 군인들중 생존자를 찾아서 학살참여의 사실을 확인받았고, 선무공작대장 윤인식과 당시 월야지서상 이제필과 순경 오정인의 학살시실 확인서를 받았으펴 생존자의 증언을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14대 국회와 15대 국회에 “명얘회복 청원서 채 출”을 하였으나- 회기의 종료로 심의도 없이 /(}동폐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 국민회의 ‘이명식인권국 장’외 1인이 2일간(98.6.29-3이함평 의 양민학살현장을 확인하고 생 존자의 승안을 확인한 후 중앙당 당무회의에 보고하였다는 소식 을 들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통보가 없습니다. 지금도 딩-시 5중대장 연락벙 김일호씨와는 전화 연락과 편지 를 주고 받고 있으며 “자기가 죽기전에 명 예회복을 위한 국회 의 증 언을 하도록 서두르라고”펀지 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간발생 10년되 던 19601 건5월 20일과 21일 한국일보 ‘이상문’기자 가 학살현지에서 특집보도한 신문자료와 ‘이상문’기자의 증언도 확보하였습니디 유족회에서는 1998년 9월21일 “(사)함평사건희생자 유족회”로 법인을 설랩하여(등록빈호;205621-0000172) 억울한 영혼들을 일 시적 이나마 위무하논 일도 하었습니다. 함평군과 군의회에서도 위령지l 제수비용으로 ‘96년부터 매년 2백 만원씩을 지 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함평양민학살시-건에 대해서 보도되거나 발간된 간행물 은 모두 찾아서 비 치 하고 있으며, 국가가 명에회복을 하여 준다면 기념관에 비치하여 다시는 이러한 불행과 파오틀 저 지르지 않는 교육자료로 활용되기 를 바랍니다. - 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