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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69세;서울거주;fi514-4209)의 증언도 이를 증명합니다. 일정별로 학살의 질상를 밝혀봅니다. 1. 교전후 4일되는 1950년 12월6일 아침 5중대 군인들은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장교마을과 똥흔마을에서 집에 있는 사람틀을 들 판과 도로변으로 니-오케하여 어린이와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하였습니다, 그때 군인 가족인 곽상태(현 양민학살유족회 이사)의 부친도 억울한 학살을 당하는 슬픔을 당한 것을 보아도 이를 알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모인 양민들을 공비나 공버의 협조자를 색출하지 아니 하고 무조건 학살을 하면서 집집에 불을 지르며 탈곡되지 않은 벼더미에 도 불을 질렀습니다. 이렇게하여 장교와 동촌마을에서 70 여명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당시에 5실-된 아들은 사망하고 등에 업은 둘째아들과 함께 부상 을 당한 강영주 할머니는 지금도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하고 。1 。 ~ A ‘ - 며 들째아들 인 안종팔은 엉덩이의 살이 흉측스럽게 총상이 님-아 있어 날씨가 꽃으면 통증윤 호소하는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2. 1950년 12월7일 이 른아침에 는 동촌마을과 2km 떨아진 함평군 월야면 월익-리 남산꾀에서는 15세부터 45세사이의 님-여 200여 1굉 이 집단핵-살 되었슴니 다. 지변,내동,성 주,순촌,송계,동산,괴 정마을 주민 700여명 을 모이게한 후 지변마을 앞 남신-꾀로 끌고간뒤 15 세부터 45세의 사이에 해당되 는 사람들을 별도로 분리한뒤 “명당 을 잡아주겠다”고 소리 지 르며 기관총 앞으로 세운뒤 “눈을 김아 라, 탐배를 피워라 등” 정신을 혼란스렵게 만들었습니다. 분위기를 이상스펙 게 느낀 방위병 낙오자 ‘정병오’기- 앞으로 나 아가 권준옥 중대장에게 “나는 방위 1성 소위 정병오다, 이떻게 할 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