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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증인들은 당시의 희생자들이 무고한 농민들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촌마을 곽상태 씨 (67 ;문장신협 이사장)는 당시 형이 전쟁에 나가 전 사한 군인가족이었는데도 불二r L 하고 부친이 살해되었 다고 증언하고 있어 학살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무차 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함평양민학살사건의 최대의 희생지 는 원악리 지 변, 내통, 성주, 월야려 순촌, 송계, 괴정, 동산마을 에서 일어났습니다. 국군들이 동촌, 장교마을에서 보 복살인을 감행하던 날 공비들이 외곽으로 피했다기­ 밤이 되자 마을 뒷산에 봉화를 올렸는데 1 0월 27일 (음력)저녁 원익-려뒤에 있는 월익·산에도 봉화를 피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10월 28일 (음력 ) 5중대는 7개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여 대략 700여명 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중에 서 15 ~45세까지의 사람들(남녀)을 모이-서 마을 로부터 300여띠터 떨어진 남산외모 끌고가 기관총과 M1 을 난사하여 모두 학살하였는데 이 떼의 희생자가 1 50여명어l 이드고 핏불이 철철 흘렀다고 합니다. 이러한 학살이 빨치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양민 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많이 있습니다. 당 시 송장더 미 에 깔려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양 채둔-씨 (65) 는 꾼경가족이 있으떤 나오라고 히-여 방위 군소대장이던 징병오씨(당시 25세)가 일어나서 이야 -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