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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대는 1950년 12월 2일(음: 10. 23) 한새틀에서 빨치산과의 전투중 국군 2명이 死亡(故 김추길;경북 영천 고경면 해선리 50. 故 김영관:부산)하는 큰 피해 를 입었으며 이러한 피해를 당한 5중대는 빨치산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양민들을 무차낼적으로 학살한 것으로 당시 남산꾀 학살 현장에서 5중대장 연락병 김일호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정일웅씨 (69세;서울)와 5중대 생존군인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2. 歲平良民盧殺의 쉴相 당시의 5중대 군인들이 저지른 학살만행의 싣상을 상세히 기술해 보고자 합니다. 가. 1950년 12월 6일 (음: 10. 27) 에 전날의 전투에서 빨치산으로부터 끈 피해를 당한 5중대는 당시 전투지 역 인근에 있는 동촌과 장교(진다려)일 대 마을의 양 민등을 70여명이나 사실-하는 만행 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16세 의 소년으로 이날의 현장을 똑똑히 지켜보 았다는 곽싱-일씨 (66) 는 동촌앞뜰 속칭 무병씨바위에 기관총을 장착해 놓고 국군의 지시로 모여 틀고 있는 양민들을 도로변과 논 가운데서 무차별적으로 시-격을 가하여 학살했다고 증언하고 았습니다. 동촌 이웃마 을인 장교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격을 가 해 20여명을 죽-였다고 강영주할머니 (81 )는 증언하고 있습니 다. 그닐· 다섯살된 아들 종탁을 잃고 자신과 등에 업헌 둘째 (안종필 ; 50) 는- 총상을 입는 피해를 당 해 지곰도 고통중에 있습니다. - 4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