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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텅앙믿학실 희샘자 영여l효|목을 위한 정원 모두 50여명이 학살되었습니다 모평 마을사람들을 살해한 이유는 명령불복종, 즉 5증대가 마을 비우라고 했는데 비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결국 8중대에 의해 귀가를 허락받은 모펑 마을사 럼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것입 니다 윤오중씨 (56)는 당시 열두살이었는데 마을입구에서 개머리판으로 죽도록 두들겨 맞고 뒤늦게 쫓겨 나오다 군인들이 눈을 돌리는 사이 논두렁으료 굴러 목숨을 구했 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이날 학살로 아벼지와 어머니, 그러고 임신 한 큰 누나와 작은 누나, 생질녀등 6명의 혈육을 잃었습니다. 또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윤경중씨(냐주공산중 교사)는 쌍구렁재 산비탈 에 장작더미가 있었는데 그 속이l다 사람들을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고 증언하여 5중 대의 천인무도한 잔악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5 당시 5중대는 사람을 학실하는 외에노 ·많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려한 민-행은 당시의 권준쩍중대장에 의히l 주도되었는데 당시 우는 아이도 5풍대 라 하면 울음을 그쳤으며 5중대를 모르는 사랑도 권준혁중대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 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장에 중대본부를 차려놓고 부녀자를 윤간하는 것은 울른 어떤 마을에서 는어머니와며느리, 딸을한방에서 윤간하는등 인간으로서 할수 없는 일들을거리 낌없이 저질컸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순회하다 눈에 드는 여자가 있A띤 어김없이 불러 들였는데 처 녀는 말할 것도 없고 유부녀까지도 가러지 않았습니다. 모평마을의 줄뺨사건도 이들의 만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룩하면 사람들 을 동네앞A로 불터 출뺨을 때리게 했는데 한번은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마주 섰습 니다. 며느리가 도저히 시아버지의 뺨을 때렐 수 없이 머뭇거리자 옆구리에 개머리 판이 ‘날아 들었으며 ,며느리는 어썰수 없이 시아버지의 뺨을 쳤으나 이날 사고로 허 리를 상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 또한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사람들에게 칩으로 돌아가라고 유도해‘다시 총부리 를 겨누는가 하면 도망가는 사림을 맞허지 않고 좌우로 총을 갈겨 혼을 뺀 뒤 사살 하였£며, 초다리 전투에서는 아이를 업고기-는 여자를 싹죽여 아이를 얼어 죽게하 는 등 잔인무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도저히 인간의 딸을 쓰고 저지를 수 없는 만행들이 모두 사실이없음을 생존자 들은 영객허 중언하고 있습니다. 그후 당시 5중대 중대상 권준혁대위는 함평사건이 끝난 51 년 6.25때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충무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권준혁중대장은 충남 서산출신 육사 - 1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