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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해보면 상곡리 쌍구룡 1951. 1. 12. 해보떤 상곡리 모펑마을에서, 이미 소개되었다가 제8중대로부터 마을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밭고 귀가했던 마율 주민들에게, 명령없이 퀴가했 다는 이유률 달아 다시 소게할 것을 지시하였습나다. 제5중대는 그 과정에서 집 집마다 불을 질렀고 해보 - 나산 도로에 있는 쌍구룡 마을 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피난가논 주민들 증 70여 명 가량을 학살하였습니다- 군인들은 썽구룡재 산비탈에 쌓아져 있던 장작더미 위에 사람룰율 올려 놓고 불을 질렀습니다(캅제1호중의 15 주민들의 중언 160쪽): 차) 나산먼 우치리 소재마을 1951. 1. 14. 나산면 우치러 소재마을에서도 위 모평 마을에서와 같이 주민을 다 시 소개시키면서 50여 명을 학살하였습니다(갑제1호종 중 236쭉 합펑양민학살사 건; 갑제2호증 한국전쟁과 합평양민학살 제134-135쪽). (2) 피해상황 현재 합병사건희생자유족률의 자체조사에 의해 신원이 확인펀 희생자률만 헤아려 보아도 179명에 달합니다. 후술하듯I 1960년 국회의 조사에서 확인펀 희생자 수는 524명인 바, 국휘의 조사노 피해의 전모를 파악하지는 끗한 것으로 보이므로, 실 제의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료 추측휩니다. 당시 제5중대는 공비들의 활동근거지 빛 식량조달 방법을 없앤다는 작전지침에 근거하여, 주민들을 학살하고 집과 양식을 불태우고 농기구를 노획무기로 빼앗았 습니다. 생존자틀은 생활기반을 잃고 타지를 떠돌아야 했고 거처할 곳도 식량도 - 3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