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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도 없이 눈에 뜨이는 대토 학살을 저질렀습니다(갑제1호중 증 159쪽 실태보고 서) . 마을 주민 캉영주(여) ,는 당시 총격으로 5세 된 아이를 잃었으며, 어린아이 를 업고 가던 자신도 총울 맞아 동에 업힌 아이까지 총상을 입었다고 증언하고 있 습니다(캅제8호증 월간예향 참조). 다) 월야면 정산리 통촌마을에서의 학살 이어 동촌마율에 들어와 예광탄으로 집에 불·을 지른 다음, “집에 한 명도 남지 말고 -마을· 앞으로 나오라, 만약 집에 남아 있다가 발견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여 주로 청장년인 주민틀 50여병을 마을 앞 논바닥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국군은 동촌 앞뜰 무명씨 바위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주민들에게 총을 발사하였고, 쓰러진 사람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발로 차보아 품틀거리변 확인사살까지 하여 학살하였습니다. 국군의 함살은 아무런 분별도 없이 주민 일반에 대하여 무자별하게 자행된 것이 었습니다. 마을 주민 꽉상태의 증언에 의하면, 군-인들은 형이 전쟁에 나가 전사 한 군인가족이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부친 곽석연을 살해하였습니다(갑 제8호증 월간 에향) . 라) 월야면 계립리 축립마을에서의 학살 이어 월야면 게럽리 죽럼마을-에 등어가 마을 앞에 60여 명을 모아 놓고 학살하였 습니다(갑제2호증 한국전쟁과 합평양민학살 제95-96쪽; 갑제3호중 중 제106쪽 희 생지와 피해상황 도면 ) . 마) 월야변 남산외 학살 - 3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