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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중에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정방섭도 포회되어 있었는 데 이는 부친 정동욱으로부터 “교편잡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가보 라”는 딸을 듣고 나갔다가 사살당하논 등(증 제3호 월간예향 참죠), 학살당한 대다수 주민들은 정치적 성향이라고는 거의 없어 도망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5중내는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없이 이 들을 부역자/ 똥비분자로 간주하고/ 죽지 않은 자는 살려준다는 말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노리개감으로 삼이ν 수 차례의 거짓말을 동원한 일제사 격과 확인사실까지 하여 집요한 학살극음 벌인 것입니 다. 3) 학살현장에서 죽은 사립- 밍에 깔려 있다가 살아난 마윤 주민 양채 문(당시 17세)은/ 당시 200여멍이 학살당했으며, 15세 미만의 아이들은 군인 들이 시켜 무서워서 집칩마다 방화를 히-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중 제4호 의 1 광남일보/ 증 제5호의‘ 1 확인서 참조). 정 남숙(당시 22세)은 7발의 총상 윤 입고도 살아났으나y 현재까지 그 총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중 제5 호의 2 확인서 참조), 정달모(당시 21세) 역시 다리애 총상이 남아 있습니다 (증 제4호의 2 광남일보 찬초). 또 당시 권준옥의 안략병이었던 김일호는 학살될 예정이었던 주민 들의 대열에서 학생신분인 정일응을 콸러 내 생명올 건지게 한 사란으로서/ 학살현장에서 전과정을 목격히였으며 위 내용이 보두 진실이라고 증언하고 있숨니다(증 제5호의 3 서신 참조). 국방부 정훈국 소속 함평지역 선무공작대원 겸 통삼면(나산 · 해보 · 윌야) 파견대장이었던 윤인식(전남도의회 제1, 2대 도의원 및 제7, 8, 9, 10대 - 7- 법무법입 덕 수 입무빔인 맏 결 번호시 장릅실 강남구 역상동, 8]4-:; 흥국생명밍딩 7층 서초구 서초3상 1574-1 우서멀냉4.5휴 강남구 얘치통 890-12 다용"fHl 렌딩 10;양 션화 : 567-2316, 찍스 : 568-3439 션화 : 3171-4004, 핵스 ‘ 3471-0234 전화 : 343:←얘30 , 찍스 3430-4200 - 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