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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받아서 식량을 하여 생활하였다 구호물은 알랑미. , 호주콩 옥수수 밀가루 등을 주었다, , . 학교는 생활 형편이 없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였고 중학 교 진학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놓을 학력이 없으며. 농사만 짓고 살고 있다 남산뫼 학살 때문에 내 삶이 꼬여. 서 억울한 생활을 하였고 지금도 겨우 살고 있는 실정이 다 당시 집안 행사장에 가면 내 또래의 아이들은 부모님. 이 챙겨주어서 부러웠다. 형님이 생존하셨다면 우리집의 형편이 좋아서 부자로 살 았을 것이고 더 좋은 삶을 살았다고 본다 특히 형님이 글. 을 잘 하셔서 훌륭한 사람이 되셨다고 본다. 정근욱 형님이 학살로 희생되어 어떤 어려움을 당한일은:● 없으셨는지요? 정진억 그 뒤로 경찰들이나 군인들이 귀찮게하거나 어려:◉ 움을 주는 일은 없었다 생활에 어려움을 받은 일은 없다. . 정근욱 형님 시신은 지금도 학살 현장에 두셨는지요: ?● 정진억 가마수 공동묘지로 이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 정근욱 제사는 어떻게 모시는지요: ?● 정진억 총각으로 돌아 가셨기에 아버지 살아 계실때는:◉ 밥을 차려 놓았었으나 지금은 내가 기독교 성도이기에 종 교식으로 제삿날인 월 일에 기도를 드린다 대부분 학12 7 . 살된 집들이 총각으로 돌아가신집들은 부모님이 생전에 는 밥을 차려 놓았으나 지금은 합동위령제 때 참여하여 제사를 모시는 형편으로 알고 있으며 그렇게 듣고있다. 정근욱 남산뫼 학살로 희생되신 분들의 성명은 지금도:● 기억하시는지요? 정진억 기억한다 충격이 워낙 컸기에 잊혀지지 않는다: . .◉ -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