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page

나 산 면 해 보 면 83년 음력 12원 5일부터 부락단위로 감행되었던 함평군 해보면(威平郵海保面) 의 4백명과 다산변(羅山面}의 3백명 학살때도 역시 제5사탄 20연대 3대대 5중대 장 권(權짧玉)대위가 지휘하는 군인이었다.이 양변에서는 동일한 방법으로 양민 을 학살했다는 것으로 1백여명이 한꺼번에 학살당한 해보면 대창리(大昌里)에서 는 군인들이 집에 불지르고 부락민들에게 살려면 동부락 속칭 『쌍구령 』으로 피난 가라고 한 r-}음 『쌍구령 』에서 미리 대기하고있던 기관총과 M1소총 빛 따발총분대가 그곳에 접근하는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일제히 사살했다. 몸서리 치는 그때의 악몽을 더듬는 임(林貞禮=25=女)씨와 정(鄭允德=45)씨의 부 언 검(金)써말에 의하면 젖먹이을 업은 부언들을 사잘한 다음 죽지 않고 어머니 시체등뒤에서 울고 있는 갓난이를 가마니에 접어 넣고 밟아 죽언 상상 조차할 수 없는 주둔군언들의 만행을 알러 주었다. 이곳은 불갑산에서 불과 1 r 킬로 』 떨어 진곳으로 월야면(月也面〕보다 학살이 늦어진 동기는 모두가 친척 집에 피난 갔다가 군언들이 점령하여 야젠 집에 들어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학살 당한날 부락민이 집에 돌아들 오는데 전기와 같은 방법으로 학살했다고 한다 동부락에서 기적적으르 잘아나온 사람이 있었다고 하나 집에 부재중이라 기자는 만날수가 없었는데 7-1금 건재해 있는 부락민들은 대부분이 꾀난 갔다가 집단학 살이 끝난뒤 마을에 뜰아왔기 때문에 난을 면했다고 했다. 학살 현장언 『 쌍구 령 』 에는 10년전에 몰살당한 30여명의 시체가 그대로 묻혀버려 거름이 되었음언 지 보리가 유난히도 잘 피였으며 잎에는 죽은 부락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칼 았다 <威平那 海保面 · 羅山面에서 光州支社 李相文 記 > - 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