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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안 불캅산(佛甲山=해발1천5백미터)에 업산했다고 경찰이었던 노(홈興用) 씨의 부언을 총살 했다는 것이다. 부락민들은 에학살에 앞서 동월 28일밤 동면에서 공비와 교전중언 2명의 군인이 전사했기 때문에 그 료복으로 알고 있으나, 학살당시 부역자와 공비는 이미 불갑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려 참변을 당한자 중에는 부역자가 한사람도 없었고 죄가 없기 때문에 남아있었던 양민들이었다는 것이다. 5중대사병 한사람과 찬해졌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아냈r::}는 월야리 (月 也里)의 김 (金容澤=45)씨의 말에 의하면 5중대는 하루에 공비 300명과 건물 50 동을 사살 또는 소각시키는 전과를 올리라고 상부에서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부 락민을 학잘하고 집을 불잘라 이를 전과로 상부에 보고했고 밭에서 일하다 꿀려왔 던 농민들을 죽이고 끄손에 쥐어진 농구(農具)틀을 사살한 공비에게 얻은 노획물 로 합수해갔r:}는 것이다. 월야러 현장에서 등에 기관총탄을 맞고도 죽은 듯이 쌓여전 시체밑에 숨을 죽이 고 있었기 때문에 기척적으로 살아 나왔다는 정 (鄭南植=33)씨와 당시 총잘하는 암무를 맡은모소대장 연락병 『 김일호 .11 1등병 때문에 학살자중에서 제외 되었다 는 정 (鄭.-雄=32)씨말에 의하면 동부락 우익전영의 청년들은 5중대가 들어오기 전 해보면(梅保面)에 주둔한 5중대를 찾아『현재 남아 있는 부락민들은 부역자 가 한 사람도 없다 』 고 말해주려 떠나려던 때에 군언들이 들어 왔기 때문에 전부 락민들은 이틀 군언들에 환호의 박수를 보내며 열광적인 환영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살려준다고 마을 뒷산에 모이라 해놓고 그곳에서 남녀 구별없이 군경가족과 50세 이상의 고령자 및 16셰이하의 어런애틀을 구분 제외하고 나머지 부락민들엔 앉으라고 말한다음 담배한대씩을 피우게했다. - 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