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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 2만 명 이상의 게릴라들이 호남지역 9개의 산악지역에서 활동하고 있 다”고 보고하였다)67) 또 주한 미국대사관의 드럼라이트(Drumright) 참사관도 1951년 1월 15일자로 “전라남도에서 한국군 20연대 및 경찰은 3천 명 정도로 추산되는 게릴라 소탕작전에 매일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보고하였 다)68) 즉 빨치산 토벌작전이 시작된 1950년 10월 호남지역의 무장빨치산 수는 약 1만 명, 1월말 경에는 3천 명 정도였으나 1951년 2월경에 들어서 그 수는 훨씬 축소되었다. 또한, 실제 무장한 빨치산의 숫자는 적었고, 무장수준도 국 군에 비하여 형편없었다. 드럼라이트 참사관은 1950년 12월 13일 본국에 보 고한 자료를 통해 ‘게릴라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유엔군의 후방에서 주요 위협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분 석하였다)69) 빨치산 출신 정관호도 당시 빨치산의 무장수준에 대해 “9.28이 후 전남도당의 무장은 퇴로를 차단당해 돌아가지 못한 인민군 무장이 유일 한 것이었다. (중략) 인민군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던 대부분의 무기들은 탄약 공급이 지속되지 못해 얼마 못가 폐기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70) 즉 호남일대가 좌익세가 강했으며, 1950년 11월 이후에도 여러 지역, 특히 지리산지구 1,700명(무장 1330+비무장 370), 전남지구 2,600명(무장 1300+비무장 1300)" 육본정보참모부, 『공비 연혁.!I, 1971, 270-271쪽. 367) Bruce Cumings, "The Originals 01 the Korean War .!l,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pp689 368) 국무부에 보고한 ‘전라남도 상황 보고’: Records of the U.S. Department of State: Relating to the Intemal of Korea : IT"남북한관계 사료집.Jl 16, 611-613쪽. 369) “「남한의 게릴라 활동에 관한 보고J: 대사관은 전라도 지방의 광범위한 게릴라활동에 대해 계속 보고를 받고 있으며(중략) 한국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2개 전라도 지역의 단 지 30%만이 안전하며, 나머지 지역은 게릴라들의 통제 아래에 있거나 치고 빠지는 게 릴라의 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에 도착한 보고에 따르면 11사단은 점차 활발하게 활동하고, 최근 2주 동안 약 2,500명의 게릴라를 사살하고 500명을 사로잡았 다. 이 보고에 따라 육군본부는 38도선 이남지역에 총 4만 여명의 게릴라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중 약 1만 8,000명이 무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략) 대사관은 게릴라의 위협을 치명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3,4개의 한국군 사단과 많은 한국 경찰을 속박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것은 또한 일상의 평화와 질서, 그리고 경제 회복을 방해한다. 그것은 사기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 나 타난다. 전라도에서 게릴라 활동을 끈절하는데 실패한다면 국회의 지속적인 비판의 원 천이 될 것이다. 게릴라 문제가 6월 25일 보다 지금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적인 게릴라는 유엔군의 후방에서 주요 위협 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내정에 관한 미 국무부문서 1 (Records of the U.S. Department of State, Relating to the Intemal Affairs of Korea) : IT"남북한관계 사 료집.Jl 16, 551-553쪽. 370) 정관호, 『전남유격투쟁사.1, 선인, 2008, 246-247쪽. - 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