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1page

가 희생됐다)51) 한 미군 보고서는 1949년 3월말까지의 제주상황에 대해 “지 난 한 해 동안 1만4000명 ~1만5000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최소한 80%가 토벌대에 의해 살해됐다”고 기록했다)52) 9연대 군수참모로서 강경진압작전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김정무는 “그때 초토화 작전이라는 말을 했는데, 싹 쓸어버린다는 말이었다. (중산간 마을에) 그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산에 올라간 무장세력이 거기에서 도움을 받으 니까 분리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은 적이라는 작전개 념이었다"353)고 증언했다. 또한 소개령에 따라 해변마을로 소개해온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가족 중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총살했다. 마을 소각 때 부대에 서는 주민들에게 사전에 소각계획을 통보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군이 현장 에 도착해서 조사한 후 부락이 공비와 협조하는 마을이라고 판단하면 불을 질렀다)54)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한 전쟁 이전의 구례지역여순사건,355) 순 천지역여순사건,356) 산청, 함양 등지의 토별과정의 민간인 희생사건,357) 문경 석달사건,358) 영덕지품면 사건,359) 거제지역 사건360) 등에서 이러한 양상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 결국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군의 빨치산 혹은 반 란군 협조자 색출 진압과정에서 민간인 집단희생은 계속되었으며, 그 양상 역시 전쟁이후 11사단 20연대의 사례와 대단히 유사하였다. 351)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lI, 2003, 373쪽. 352) Hq. USAFIK, G-2 Periodic Report, No. 1097, April 1, 1949. 353) 김정무(77세·서울시 종로구 부암동·당시 제9연대 군수참모, 준장 예편, 육사2기 동기회 장. 2002. 9. 25. 채록) 증언. 354) 참고인 최병우, 면담보고서(2007.1 1.30.)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8, 위의 책, 126쪽에서 재인용 355) 진실화해위원회, 구례지역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 (2008.7.8.) 356) 진실화해위원회, 순천지역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 (2008.1.5.) 357) 진실화해위원회, 산청 시천 · 삼장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 (2007.1 1.20.) 358) 진실화해위원회, 문경석달사건 진실규명결정 (2007.6.26.) 359) 진실화해위원회, 영덕지품면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 (2008.1 1.4.) 360) 진실화해위원회, 거제지역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 (2008.11.25.) - 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