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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미리 입수한 명단을 보며 호명한 경우도 있었다. 1950년 12월 9일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에서는 동네 이장을 앞세운 채 군 인들이 들어와 20여 명을 호명하였다. 부역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주민 1명을 현장에서 총살한 다음 18명을 금덕리 문장장터의 두루샘골에서 살해하였다 31이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사건도 5중대가 주민들을 이문초등학교에 집결시킨 뒤 택호와 이름으로 호명해 선별한 주민 23명을 나산천변에서 학살한 사건 이다. 희생자 중 20세인 안명임(여)을 제외하고 50대 이상이 6명, 15세 이하 가 3명이었다.317) 이 밖에도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여맹위원장이 아니냐며 사살하는가 하 면318) ‘단발머리’라거나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빨치산으로 간주하 여 사살한 경우도 있었다.319) 호명을 한 경우 앞서 잡혀간 주민이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거나 빨치산들의 강요로 식량을 제공한 단순 부역행위임에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즉결처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20) 1대대 3중대 분대장이었던 김태화는 “당시 각 마을마다 밀대(첩자)가 있어 서 빨치산에 관한 정보가 중대로 들어왔고, 그런 정보에 근거하여 각 마을에 서 작전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321) 위 사례에서 보듯 모든 살상은 수사기관의 연행 혹은 재판절차 없이 이루 어졌다. 현장에서 일부 선별절차를 거친 경우에도 군인들이 현장에서 얼굴을 보면서 짐작한 다음 20~30대의 젊은 남자를 추려내는 방식이었다. 또한 나이 별 · 성별로 따로 앉게 한 후 17세 이상 40세 이하의 남자를 구분하여 총살 한 사례도 있었다. 즉 군은 빨치산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그리고 부역 316) 신청인 정재선 진술조서 (2006.5.17.) 317) 신청인 김수창 진술조서 (2006.8.3.) 318) 국군은 순창군 동계변 신흥마을에 진입하여 정석남(여 • 당시 29세 · 임신 6개월)의 옷차 림을 보고 여맹위원장이 아니냐며 마을 앞에서 총살하였다. 참고인 이상운 진술조서 (2008.8.19.); 용면 산성리 주민 김재철은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의심받아 1950년 10월 31 일 20연대 1대대 3중대 군인들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319) “순창면 쌍곡리 김재봉의 처는 당시에는 드문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빨치산과 관련 이 있다는 오해를 받고 희생되었다" 참고인 이상묵 진술조서 (2008.9.4.) 32이 순창읍 백산리에 거주하던 황판동은 1950년 12월경 국군에게 연행된 후 고문에 못 이 겨 좌익에 협조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허위 자백하였는데, 국군은 황판동이 지목한 백산리 주민 10여 명을 대동산 하천변에서 총살하였다. 321) 참고인 김태화 통화보고서 (2008.1 1.14.) - 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