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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죽이 기도 하였다. "309) 청장년을 임의적으로 선별하여 무조건 살해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군인 들은 현장에서 외모에 의해서 연령을 지레짐작하고 선별하였다. 1950년 12월 7일 새벽 5중대는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 순촌, 송계, 괴정, 동산마을과 월악 리 지변, 내동, 성주마을에 들이닥쳐 집집마다 불을 지르며 주민들을 남산봐 로 집결시킨 다음 집결한 주민 300~400명 310) 중 17세 미만과 45세 이상311) 주민 그리고 군경 가족을 분류해 내려 보낸 다음 17~45세 사람들을 기관총 과 소총으로 사살하였다}12) 1950년 11월 17일 발생한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사건에서는 집결한 주민 중 18~40세의 젊은 남자들이 임의로 선별하여 집단 살해하였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당시 주민 중 청장년이 거의 전원인 90여 명으로 확인되었다} 13) 1951년 1월 20일 역시 2대대 5중대에 의한 동창교 사건에서도 군인들이 주민 200여 명을 ‘만봉천’ 개천가로 집결시킨 후 군경가족을 제외한 동네 청·장년층 남자 70명 이상을 동창교 인근 신북여관 옆의 밭으로 데려가 전원 을 무조건 사살하였다.314) 1950년 10월 30일 발생한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 주민 희생사건도 새벽에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이 총을 쏘며 들어와 집에 남아있던 20~30대 청년 남 자들을 마을 앞으로 끌고 나가 전원을 총살한 사건이었다}15)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부역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살해한 경우도 있었 다. 국군은 관내 경찰관이나 이미 잡아둔 좌익활동가, 정보원, 동네 이장 등 을 시켜 집결한 주민들 중 부역자를 현장에서 지목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 309) [양태일(3대대 12중대 사병) 진술녹취록(2007.12.11)] 310) 신청인 정남진 진술조서 (2007.1.19.); 당일 남산외에 모인 주민의 수에 대해서는 250명에 서 500명까지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신청인 정태환 진술조서 (2006.6.29.) 311) 선별의 기준이 되었던 연령대에 대해서는 지역별로 15-40세, 17-45세, 15-45세로 진술 이 조금씩 다르다. 312) 하루 앞서 벌어진 장성군 삼서변 수해리 사건에서는 여자와 노인들을 소개시킨 다음 20대 -40대 남자 12명을 뽑아내 총살하였다. 참고인 임화수 진술조서 (2006.6.7.) 313) 참고인 김덕초 진술녹음(2007.9.7.); 참고인 박상진 진술녹음(2007. 9. 13.); 참고인 최철 우 진술녹음(2007.9.14.); 참고인 황창연 진술조서 (2008.4.23.); 참고인 허용 진술녹취 (2007. 9. 13.); 참고인 황금현 진술조서(2007.1 1.14.); 참고인 최성우 진술녹서(2008.1.4.) 314) 조사결과 확인된 희생자는 31명이었으나 ‘나주시 세지면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추 진위원회’에 의해 파악된 별도의 희생자 명단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의 희생규모는 최 소 74명에서 최대 140여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15) 신청인 이춘백 진술조서(2008.4.3.); 신청인 이성섭 진술조서(2008.4.1.); 신청인 이우백 진술조서 (2008.3.31.) - 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