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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을 전원 빨치산으로 간주하여 어떤 법적 절차 없이 이들을 사살하거 나 심지어는 어린이와 아기를 업고 있는 부녀자, 50세 이상의 전투능력은 물 론 사회활동 능력이 없는 주민들까지 총살한 예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빨치산이나 부역혐의가 의심되는 주민을 생포하여 사단 정보과 에 넘긴 경우도 있었고 부역자 확인 등 극히 형식적인 선별절차를 거친 경 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군이 진입하는 시점까지 인민군이 통치한다고 판단되는 마을의 주민들을 적절한 선별절차 없이 모두 부역자, 공비, 빨치산 내통자로 간주하여 연행 · 살상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 모든 참전 사병들은 훈련과정에서는 물론이고 토벌작전에 들어가기 이전에 병사들이 지켜야할 작전 교범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상급 지휘관들로부터 비민분리의 원칙 혹은 주민보호를 위한 사전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이러한 군의 확인, 선별절차 없는 무차별 사살과 관련하여 20연대 1중대 사병이었던 김충만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중대본부로부터 해당 지역이 빨치산이 은거해 있는 위험지대라는 연락 을 받을 경우, 미리 포를 쏘고 위협사격을 하면서 들어갔다. 그리고 마 을에 가서는 누가 빨갱인지 양민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아 주민들 의 말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다 빨치산이라고 총을 싹버리거나 잡아가버렸고 마을에는 보통 노약자밖에 남지 않았다."306) 20연대 1대대 4중대 소속 사병 출신 조병형은 “죄 없는 마을 사람들도 많 이 죽었다. 마을로 작전을 나가면 주민들이 군인들을 아군인지 인민군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우리 아들도 인민군 갔어요’라고 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 런 노인들은 즉결처분되었다”고 진술하였다 307) 20연대 2대대 학도병이었던 반삼모는 “군인들이 주민을 총으로 위협하여 소를 빼앗아온 일도 있고, 부역혐의자 가족을 방에 가둬놓고 산채로 불태운 일도 있었다”고 진술하였다)08) 국군은 동료들이 빨치산으로부터 피해를 입 은데 대한 보복심, 혹은 “주민들에게 적을 도우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306) 참고인 김충만 진술녹취 (2008.1 1.20.) 307) [조병형 (20연대 1대대 4중대 사병) 통화보고서 (2008.1 1.14)] 308) 참고인 반삼모 진술녹취 (2008.9.9.) - 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