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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를 쇠려 시루에 떡을 찌고 있었는데, 국군이 방에 계신 시아버지를 나오라고 하여 ‘왜 떡을 찌냐’고 물었고, 시아버지는 영겁결에 ‘생일이라 서 떡을 찌고 있다’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반란군에게 주 려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총대로 시아버지를 머리고 등이고 가리지 않고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옆집 김귀수씨네로 가서 김귀수씨를 화장실 옆에서 총으로 쏘아 죽였어요. 시아버지는 그날부터 10년을 시름 시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223) - 화순 도암면 벽지리 형성열 사례 국군과 청방이 함께 마을에 진입하여 청장년 남성을 부역혐의자로 의심하 여 구타한 후 연행하던 중 혐의가 풀려 4명은 석방되었으나, 구타로 중상을 입은 1명은 살해되었다. “주민들을 다 나오라고 했는데 마을 앞에는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도장 리와 정천리 주민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 중에서 제일 젊은 분인 형학 남, 박병윤, 하동완과 정천리의 진동계 그리고 도장리의 형성열을 나오 라고 하고는 도리깨로 패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들을 구타한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군인을 따라온 민간인들이었습니다. "'C중략)… 하동완은 원래 전쟁 전에 삼팔대라는 경찰기동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군인들 에게 끌려 강산재까지 갔다가 거기서 삼팔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기를 만났답니다. 그 사람이 중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동기한테 5명 모 두 무고한 사람이라고 사정얘기를 해서 풀려날 수 있었는데, 그 중위가 형학남씨는 너무 많이 맞아서 풀어주어도 혼자 갈 수도 없고 며칠 못 가서 죽을 것이라며 그냥 총살시키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더군요."224) “백부 형성열은 전쟁 당시 마을에서 군경 합동작전이 벌어질 때 끌려가 당시 다른 마을에 살던 형학남 등과 함께 심한 구타를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갔다가 어둠을 틈타 도망쳐서 숨었고 이튿날 마을로 돌아왔는데, 가 슴과 무릎에 심한 구타를 당해서 그 이후로 무릎을 펴지 못하고 살았습 니다 "225) 223) 강점 례 진술조서(2008.7.10.) 224) 노연태 진술녹취록(2008.10.6.) 225) 형맹구 통화보고서 (2008.10.23.) - 8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