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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돌아다니면서 집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이들 중 20-40대였던 주민 12명을 200m 정도 끌고 가서 총살하였습니다. 또 남아있던 부녀자 와 노약자도 죽이려고 기관총을 설치하고 소총을 든 군인들이 사격자세 를 취했습니다. 이때 주민 한팔문씨의 부인이 현장 지휘관에게 다가가 ‘죽더라도 이유나 알고 죽읍시다’라고 하자 지휘관이 어딘가로 무전을 쳐 확인했고, 그리고는 이 지휘관이 무릎을 치면서 ‘아차 하마터면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아주머니 진짜 말 잘했다’고 하면서 더 이상 사격 명 령을 내 리 지 않았습니 다."206) “생존한 군인이 동면 경치리로 피신하자 경치리에서 보초를 서던 주민 이 ‘개새끼가 온다’고 외쳤고, 그 군인은 경치리를 피해 화순읍으로 돌 아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중략)… 당시 중위 정도로 보이는 대장이 마을을 잘 못 찾았다는 것을 알고는 총살을 멈추고 돌아갔고, 후에 사과 하러 다시 왔습니다."207) 4) 함정토벌에 의한 살해 토벌군은 작전 중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어느 편에 서야 생존이 가능한지 공포와 불안에 떨던 전시 하의 주민들을 ‘시험대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다. 국군이 인민군으 로 위장한 다음 마을에 들어가 부역자를 유인해서 살해한 경우(함정토벌), 살 려주겠다고 하고 죽인 경우(기망), 부역혐의자가 사라지면 남은 가족들을 대 신 살해한 경우(대살),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빨치산, 부역자들을 공개 총살한 경우, 주민들을 부역에 동원한 다음 돌려보내지 않고 살해한 사 례도 있었다. 수복과정에서 주민 중에 인민군 혹은 빨치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을 가진 토별군은 자신을 인민군으로 위장하여 동조자를 선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탄약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토벌군은 탄약을 아끼고 또 쉽게 부역혐의자를 선별하려는 목적에 인민군복으로 위장하여 마을에 진입 하여 동조자를 총살하였다.208) 206) 강길수 진술조서 (2008.7.22.) 207) 박태 순 통화보고(2008.10.23.) - 8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