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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안리 뒷산에서 군인과 공비들이 교전을 했는데, 군인 몇 명이 피해를 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날 군인들이 대대적인 작전을 했다고 해요. 교전이 있었고, 다음날 보복을 하러 왔는데, 무장한 공비들은 순창 쌍치로 모두 가버렸고, 민간인만 남았는데, 군인들이 포위를 해서 수색 을 하여도 민간인밖에 없으니 그 사람들을 마을 뒤로 몰고 가서 싹 죽 여 버 렸지요. "199) - 함평 윌야면 정산리 장교마을 사례200) 빨치산과의 교전 중에 사병 2명이 전사하자 작전지역에 위치한 마을 주 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군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총으로 위협하면서 죽기 싫으면 밖으로 나 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막내 동생을 업고 저와 동생은 급히 집 앞 신작로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해뜨기 전으로 새벽녘이었는데 밖으로 나 가니까 어머님을 개머리판으로 때리면서 ‘남편은 어디 갔느냐, 죄 없으 면 안 죽일 테니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집 에서 10분정도 떨어진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있던 아버님을 데리고 왔 습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신작로에 두 줄로 앉혀놓고 고개 를 들면 죽여 버린다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일부 군인들은 집에 불을 지르고, 일부는 주민들을 위협하면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군인들이 젊은 남자들을 신작로 옆 논이 있는 쪽 으로 나오라고 하였는데 대략 70명 정도가 현장에서 바로 총살을 당해 서 논으로 나자빠졌습니다 "201) “그 전날 신기마을에서 군인 2명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빨 치산들이 봉화올리고 그러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중략) ... 장교마 을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촌마을에 왔을 때는 기분이 한결 풀려서 여자들과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202) 199) 이상용 진술녹취록(2008.9.23.) 200) 2007년 상반기 보고서, 「함평 11사단 사건J 489쪽. 201) 신청인 곽공례 진술조서 (2006.5.25.) 202) 신청인 서백수 진술조서 (2006.7.25.) - 8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