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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격대는 도동리 척동마을을 근거지로 하여 인근 마을의 청년들을 모아 유격훈련을 시키기까지 하였다.159) 이 때문에 주민들은 동년 3월 중순까지도 빨치산의 영향 하에 있었다. 척동마을의 가옥이 소각된 것은 3월 19일이었다. 사건 발생 사흘 전인 3 월 16일, 나주경찰이 도동리의 가옥을 소각했고 산으로 피신했던 주민들은 마을이 소각되자 구장의 제안에 따라 추후 군경이 다시 들어오면 그들을 따 라 소개를 나가기로 하였다. 사건 당일 오전 10시경 군인들이 진주하자 주민 들은 군인들을 환영하였고 군인들의 지시에 의해 피난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숨어있던 빨치산이 던진 수류탄에 수색 중이던 대원 1명이 피살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빨치산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구장을 포함한 청장년 남자들이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토벌군에게 살해되었다 16이 바.순창 순창지역은 노령산맥의 산간에 위치하며 섬진강을 경계로 동쪽은 남원시, 북쪽은 임실군, 서쪽은 정읍시, 남쪽은 담양군과 곡성군에 접하고 있다. 토벌 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이 많았던 쌍치면, 복흥면, 구림면은 회문산을 중 심으로 한 해발 2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인민군 및 빨치산이 근거지로 삼았 던 지역이다. 순창지역에 대한 최초 수복작전은 경찰의 작전이었다. 1950년 10월 1일 경찰은 순창읍을 수복하고 경찰서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10월 10일 빨치산의 습격으로 인해 경찰서가 완전히 소실되면서 순창읍은 다시 빨치산의 영향 하에 있었다.161) 1950년 10월 15일 담양에 진주한 20연대 1대대가 11월 초 2개 중대를 순 창으로 파견 · 주둔케 하면서 일부 지역이 재차 수복되었으나,162) 치안이 완 159) 참고인 홍양원과 서상종은 “1951년 1월경 빨치산에게 도동리 척동마을로 끌려가 훈련 을 받았는데, 당시 척동마을에는 우리들처럼 외지에서 끌려온 청년들이 많았다”고 진술 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r나주 다도면 민간인 희생사건(l)J,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n, 2009, 184쪽.) 160) 현장을 목격한 주민 강희주는 군인 1명이 카빈으로 8명에게 총격을 가했고, 7명은 즉사 했으나 1명은 30분을 폼부림치다가 결국 사망했다고 진술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나주 다도면 민간인 희 생사건(1)J ,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2.n, 2009, 185쪽) 161) 진실화해위원회, r순창지역민간인희생사건J , ir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3.n, 2009, 182쪽. 162)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2009, 34쪽. - 8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