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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에서 마을로 총과 포를 쏘며 들어와 도동마을 21채의 가옥에 불을 질러 18채가 전소되었다. 학도연맹원들에 의한 부역자 색출 및 처벌사건도 있었다.141) 인민군 점령기에 삼계면 주산리 백산에서는 좌익세력의 강압에 못 이긴 마을 청년들이 전쟁 전 이장이었던 김택근의 조모를 죽창으로 살해하는 일 이 있었다. 이 사건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수복 후 김인현과 김장근을 사건의 주모자로 학도연맹에 신고하자 학도연맹원들은 12월 13일 김인현과 김장근 을 주산리 월산마을로 끌고 가 총살하였다.142) 또 삼계면 상도리 도동마을에서도 학도연맹원에 의한 부역혐의자 살해사 건이 있었다. 도동마을은 12월 7일 국군에 의해 가옥들이 소각되고, 주민들 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 사창리 등지로 소개 되었는데 연고지가 없던 주민들 일부가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불에 타지 않은 몇 집에 나누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월 16일 삼계면 사창리에 있던 학도연맹원들이 도동마을을 찾 아와 보도연맹원으로 살아남았던 조정환과 김영매를 연행하여 사창리 금성 마을에서 총살하였다. 2대대는 또 1월 30일 삼서면 학성리 원촌마을에서 4세 여아와 53세 주민 문석암을 살해하였다. 학성리는 원래 빨치산 세력이 강하여 토벌군이 진입하 지 못하였으나 토벌작전이 강화되면서 학성리의 빨치산들이 1월 29일 불갑 산으로 퇴각하였다.143) 이튿날 학성리로 토벌을 나온 토벌군은 원촌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소각하며 인근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을 수색하다 4세의 손녀 를 업고 숨어있던 문석암 등 3명을 발견하여 현장에서 총살하였다.144) 또 2월 18일에는 불갑산지역의 토벌작전을 위해 장성에서 함평으로 이동 141) 학도연맹원에 의한 피해 사례는 담양읍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담양군 용면에 거주했 던 노동식은 1950년 10월 추월산 가마골의 빨치산을 피해 답양읍으로 나왔다가 학도연 맹원들에게 부역자 혐의로 잡혀 고문을 당했고, 다시 국군에게 인계되었다.(노동식 진 술조서 2008.4.1) 142)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 2009, 78-79쪽. 143) 원촌마을 주민 문만섭과 박봉옥은 당시 영광의 막퉁이부대, 무안부대, 장성 8중대 등 다 수의 빨치산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원촌마을과 인근의 태청산에 와서 두 달 동안 살 고 있었기 때문에 국군은 항상 마을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대도리 앞산까지만 올라왔다 가 돌아가곤 했는데, 군인들의 작전이 계속되자 빨치산들도 결국 노약자를 제외한 주 민들을 데리고 불갑산으로 갔다고 진술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 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2009, 95-96쪽) 144)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11사단 사건J , 2009, 96쪽. - 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