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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갔다”고 진술하였다138) 한편, 2대대 7중대는 장성지역 북쪽과 정읍 입암면 지역의 빨치산 토벌을 위해 10월 말 북이면 사거리에 주둔하면서 인근지역의 수복 및 토별작전을 전담하였다. 11월 11일 주둔지 남쪽의 북일면 박산리로 수색을 나왔던 선발대 2명이 작동마을 앞에서 빨치산의 습격으로 전사하는 일이 발생하자 뒤 따라온 본 대가 작동마을 주민 변금연 등 8명을 징발하여 시신을 주둔지로 운반하게 하였다. 주민들은 토별군의 명령에 따라 시신을 메고 북이면 사거리로 이동 하였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빨치산들이 사거리의 북이지서를 습격하였고, 그 뒤로 작동마을의 8명에 대한 소식이 끊겼다.139) 함평군 해보면 문장에 주둔하던 2대대 5중대는 1950년 12월 6일 오전 월 야면 정산리와 계림리를 거쳐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로 이동하였다. 토벌군은 신죽 · 월곡 · 양현마을의 가옥을 소각한 후, 주민을 불러 모아 놓고 여자와 노인들은 함평군 해보면 문장으로 소개 나갈 것을 명하고, 20대에서 40대까 지의 남자들은 3열로 정렬시킨 뒤 총살하였다. 주민 임양수와 김수성도 5중 대 군인에게 총살되었는데, 이들은 5중대원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을 함평군 월야면과 장성군 삼서면 사이에 있는 대도천을 업어서 건데주고 난 뒤 현장 에서 5중대원에게 사살되었다.140) 2대대의 작전지역이었던 장성군의 일부 지역에서는 토벌군이 학도연맹원 과 함께 작전을 펴면서 민간인을 사살한 경우도 있었다. 12월 7일 2대대 병력은 삼계면 학도연맹원과 함께 삼계면 상도리 도동마 을을 소각하고 주민을 소개하면서 국군을 피해 산으로 숨었던 주민 김영갑 등 4명의 남성을 붙잡아 총살하였다. 2대대와 학도연맹원은 반격도 없는 상 138)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 2009, 70쪽. 139)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 2009, 82-83쪽. 140)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중대장 권준옥 대위)는 1950년 12월 6일 함평군 월야면 장 교 · 동촌 · 서촌 마을, 12월 7일 월야면 남산외, 12월 8일 월야면 외치마을과 나산면 이 문리, 12월 31 일 해보면 쌍구룡, 1951년 l월 12일 모평 마을, 우치리, 1월 14일 나산면 우치리 등에서 최소 248명을 학살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함평 11사단 사건J, ~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J, 2007, 467-546 쪽 참조) - 8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