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page

일주일 후인 10월 30일, 담양읍의 1대대 토벌군은 덕곡리에 진주하여 청 장년 주민들을 총살하였다. 새벽부터 마을을 포위한 토벌군은 마을로 총을 쏘며 들어와 청장년 남자들의 빨치산 혹은 부역 여부를 심문한 후, 마을 옆 산비탈에서 총살하였다. 담양읍 인근지역에서 수복작전을 펴던 1대대는 1950년 11월 7일에 담양읍 추성경기장에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20연대장 박기병의 연설과 함께 부역혐 의자에 대한 공개처형을 실시하였다Ií담양군지』에 따르면 당시 주둔군인 4중 대는 1950년 음력 9월 27일(양력 11월 6일) 공산당 악질분자 49명을 검거하 여 담양공설운동장(추성경기장)에서 주민들을 집결시켜 그들의 죄상을 낱낱 이 공개하고 공설운동장 건너편 산기숨에서 공개 총살하였다. 이날 공개 처형된 담양읍 주민 함장수는 인민군 점령기에 마을의 민청위 원장을 도와 광주에서 담양으로 무기를 운반했던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담양읍 수복 이후 부역혐의자로 수감되어 있었다. 함장수를 포함한 모든 부 역혐의자들은 1대대 G-2 정보과장이었던 김 00을 비롯한 토벌군에게 지독 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본인의 무혐의를 끝까지 주장 하며 버티기도 했지만, 함장수를 비롯한 대다수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부 역사실을 자백 또는 허위 자백하여 결국 당일 모두 총살당했다.132) 11월 10일에는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 갈전리, 그리고 화순군 북면 맹리 주민들이 토벌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운산리와 갈전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화순군 북면 맹리에 접해있고 세 곳이 모두 동북쪽으로 화순군 북면 백아산으로 이어지는 교통 요지로 당시 백아산에 위치한 전남도당 본부와 빨치산 전남 총사령부로 이동하던 빨치산 들이 거쳐 가는 중간지점이었다. 통과하여 광주로 이동하던 제 11사단 정보참모 김용주 대령이 미군과 함께 빨치산의 습 격을 받아 전사한 일이 있었다고 진술하였고, 덕곡리 주민 이우백 등은 빨치산의 이 같은 주둔상황과 경찰 가족의 피살 사실을 진술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 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 2009, 35-36쪽) 132) 진실화해위원회, 「전남지역(담양 · 장성 · 화순 · 영광) 11사단 사건J , 2009, 46-47쪽; 당 일의 처형장변을 목격한 주민 함종호는 1차로 M-1 소총에 의한 처형이 진행되었고, 사 람들이 쓰러진 후 장교 한 명이 재차 권총으로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진술하였다.(함종 호 진술조서 2008.4.1) - 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