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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청장년에 대한 소식이 끊겼다가 보름이 지나서 해보면 금덕리 두루샘골 에서 17구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같은 날 나산면 이문리에서도 부역혐의자 를 잡기 위하여 5중대가 진입하여 23명의 주민을 지목하여 나산국민학교에 서 총살하였는데 이중 2명은 살아났다.122) 12월 30일 5중대는 해보면 대창리 인근에 토벌작전을 나갔다가 빨치산의 저항으로 퇴각하게 되었는데, 다음날인 12월 31일 대창리 성대마을에 진입하 였다. 성대마을의 원거주민들은 그 이전에 타지로 소개를 나갔고, 당시에는 불갑산 용천사 아래 마을인 광암리 주민들이 군경의 소개명령에 의해 성대 마을에 와서 살고 있었다. 5중대는 당일 가옥을 소각하면서 주민들을 인근의 해보중앙국민학교 옆 쌍구룡으로 집결시켜 남녀를 구분한 뒤 먼저 남자들에 게 기관총을 난사하였고, 여자들은 학교 앞 도로 건너편 밭에서 총살하였다. 이때 주민 한 명이 군경가족도 죽이느냐고 항의하자 5중대는 군경가족을 한 쪽으로 불러내고 나머지 주민들은 총살하였다 123) 1951년 1월 12일에는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당하는데, 사건 전날 모평마을 뒷산에서 빨치산이 5중대 본부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일이 있었다. 5중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모평마을을 초토화하였다. 이틀 후에는 나산면 우리치 소재마을 주민들이 사살되었는데, 당시 소재마을 청장 년들은 5중대의 만행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미 대부분 피신한 상태였고, 마 을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남아있었다 124) 5중대에 의한 함평지역의 민간인 집단희생은 1월 14일로 끝났지만, 2월 20일(음력 1월 15일) 20연대 2대대의 ‘함평군 해보면 불갑산 공비토벌작전’ 직후 인근 주민들이 군인들의 총격에 사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불갑산지구와 빨치산사령부가 불갑산 용천사에 있어서 인근 해보면 광암리 가정 · 광동 · 운암마을, 대각리 오두치 · 각궁 · 회 122) 현장을 목격한 주민 김수창은 당시 군인들이 명단을 가지고 주민 몇몇에게 호명하는 사람을 찾게 했다고 진술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함평 11사단 사건J , 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l!, 2007, 496쪽) 123) 진실화해위원회, 「함평 11사단 사건J , 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l, 2007, 496-497쪽. 124) 진실화해위원회, 「함평 11사단 사건J, 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l, 2007, 498-499쪽. - 8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