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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사건의 전개와 특정 1. 호남 각 지역별 희생사건 유엔군과 한국군의 반격으로 북으로의 퇴로가 봉쇄되자, 인민군 잔존세력 은 북상하지 못하고 호남의 산악지역에 들어가 현지 좌익과 합류하여 게릴 라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9.28 수복 이후 군의 토벌작전 과정에서 발생 한 민간인희생은 대부분 빨치산 유격대의 활동이 빈번했던 호남의 산악지역 인근 마을에서 있었다. 아래에서는 호남지역 군 토벌작전의 전개과정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희생 사건을 지역별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가. 함평(영광 및 불갑산 포함) 함평지역에 수복군이 처음 진주한 것은 1950년 10월 22일로 목포와 무안 을 거쳐 함평으로 진주하던 3대대가 함평군 학교면 사거리에서 빨치산과 교 전을 벌였다. 교전 후 빨치산은 주민들을 끌고 불갑산 방향으로 퇴각하였다. 토벌군은 빨치산과 교전 후 빨치산 등을 추격하면서 인근마을인 사거리 율 동 · 낙천동, 월산리 월봉 · 송산 · 신흥동 마을 청장년을 색출, 사살하였다.1 14) 10월 23일 3대대는 부대를 둘로 나누어 함평읍 수호리 대등 · 해동마을과 대동면 향교리로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벌군은 진입에 앞서 총과 포로 위협사격을 가한 후 대등마을에 진입하여 이 마을 청장년을 마을 뒤 ‘대딴 봉’에서 총살하였고, 옆 동네인 해동마을로 진입한 군인들 역시 주민들을 마 을 밖으로 끌어내 사살하였다. 한편 대동면 향교리 향교마을에 진입한 군인들은 남교마을에서 수색도중 자신들에게 “동무”라고 부른 여성 3명을 이용해 향교리 여맹원을 색출하여 남교마을 ‘숲쟁이길’에서 총살하였다. 또 인근의 명교마을에서는 주민들을 마 을 앞 향교로 모이게 하는 과정에서 언어장애가 있는 주민이 토별군의 질문 에 답변을 더듬자 확인조치 없이 총살하였다. 3대대는 그 뒤 나산면 나산국 114) 진실화해위원회, 「함평 수복작전 민간인 희생사건J , 11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2.1, 2008, 106쪽. - 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