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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20일 이후 호남지역은 인민군이 점령하였고, 9월 28일 이후 서 울 인근은 수복이 되었으나 호남지역은 여전히 수복을 위한 교전상황이 지속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9.28 수복 이후 토지개혁 등을 비롯한 북한군의 모든 사업은 중단되었고, 지하당 조직과 빨치산 무장유격투 쟁으로의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지리산을 비롯한 백운산 · 백 아산 • 회문산 · 덕유산 · 불갑산 등 산악을 중심으로 소위 ‘해방구’25)로 불리 던 빨치산 유격지구가 형성되었는데 이곳에는 빨치산뿐만 아니라 그 가족 및 친인척, 군경토벌을 피해 들어 온 일반주민들도 합류하였다. 유엔군의 인 천상륙작전부대와 낙동강 전선에서 북상한 유엔군 부대가 평택 북방 서정리 에서 합류하게 되자 호남지구와 마산 · 창녕전투에 투입되었던 인민군 4, 6, 7, 9, 10사단의 주력부대는 퇴각로가 차단되었다. 인민군 주력부대는 소백산 맥과 태백산맥을 이용하여 북상했으나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은 지방좌 익과 합류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였다.26) 전남지역에는 인민군 점령 당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이 광주 무등산 증심 사에 설치되었다가 1950년 9월 25일 모든 당 조직을 지하당 기구로 개편하 라는 중앙당의 지시27)에 따라 화순군 북면의 백아산 기숨에 위치한 용곡리 용촌마을로 당 본부를 옮기고,28) 모든 당 조직을 비합법 체제로 전환하였다. 1950년 10월 5일 전남도당 조직위원회는 인민유격대 전남총사령부 및 6개 지구29) 창설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하여 지하당 및 빨치산 체제로 재정비하 였다)0) 전북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전북도당위원장 방준표는 도당지 25) 이 용어는 좌익이 사용하는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한 국가 안에 저항세력이 중앙권력 의 지배를 배제하고 저항의 근거지로 지배하는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는 중국 혁명 과정 에서 공산당 정권이 통치했던 지구를 지칭한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들 해방구를 통상 ‘미수복지구,’ ‘적성지구’ 등으로 지칭하였다. 26) 김남식, 앞 책, 456쪽; 전사편찬위원회, 『대비정규전사jJ, 148-149쪽. 27) 김남식, 앞 책, 455쪽. 28) “양력 10월경 우리 용촌마을에 전남 도당이 있었어요. 공비들 도당. 그리고 수리 새목에 총사령부가 있었고. 그때 총사령부에서 도당 보위중대 40명을 용촌으로 보냈어요."(참고 인 류규열 진술녹취록 2008.10.7.) 29) 지구란 지하로 잠입한 각 시 · 군당과 유격대의 원활한 지도와 연락을 위하여 일정한 지 역에 설치하는 연계조직으로 당부 조직이 아닌 일정한 거점조직을 말하는데, 6개 지구 는 각각 무등산에 광주지구, 담양군 추월산과 가마골에 노령지구, 화순과 동나주 그리고 장흥군 유치면 연봉의 안쪽에 위치한 유치지구, 불갑산 용천사에 불갑산지구, 화순군 모 후산에 모후산지구, 광양시 옥룡면에 백운산지구 등이다(김영택, 「한국전쟁기 남한 내 적색 빨치산의 재건과 소멸」, 『한국현대사연구』 제2집, 2003년 겨울, 132-134쪽). - 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