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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해군경 및 지휘관 함평지역민간인희생사건 중 군유산작전 희생자들은 1951년 2월 24일 한국 경찰의 「적일일동향보고(Daily Enemy Activity Report) J 에 따르면 1951년 2월 19일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와 함평과 영광경찰서 기동대가 군유산 인근 300 여 명의 ‘빨갱이’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살해되었다, 1951년 2월 19일 군유산 작전 당시 전라남도경찰국장은 심형택 경무관이었으며, 함평경찰서장은 이철 호 경감, 영광경찰서장은 이차동 경감이었다,436) 또 경찰의 수복작전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1950년 11, 12월부터 함평경찰서 장은 김판수 경감이었으며, 각 지서장은 손불 한길수, 신광 나성남, 대동 김근 진, 나산 나병호, 해보 이민순, 월야 이계필 경위였다,437) 또 전쟁이전 광주에서 창설 후 주둔하였던 제4연대가 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는데, 제4연대를 개칭한 제20연대가 한국전쟁이전까지 광주에 주둔 하였다,438) 따라서 함평지역 토벌작전을 담당하였던 부대는 제4연대, 제20연 대로 판단되며 20연대는 1948년 11월 20일부터는 제6여단에 예속된 것은 확 인되었지만439) 대대 • 중대별 주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 가해의 지휘계통과 위법 여부 1) 가해의 지휘계통과 책임 함평지역민간인희생사건 중 군유산지역 토벌작전이 었던 1951년 2월 19일 의 경찰의 지휘계통을 보면 전라남도경찰국장, 함평경찰서장 · 영광경찰서장, 함평경찰서 관내 각 지서장(주임)으로 내려간다. 군유산지역 토벌작전 당시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가 함평과 영광경찰서와 합동으로 군유산을 사방에서 공격하였다,440) 그리고 1950년 12월 12일의 손불 436) 1948년부터 1950년 전쟁이전까지 함평경찰서장은 최신방, 김판수, 김상효, 김판수 경감이었다. 전 라남도지방경찰청, r전남경찰사~, 1992, 929 ' 978 ' 983쪽. 437) 전라남도지방경찰청 경무과-013900(2α)9.8.14.) 438) 이성가 중령(1948.8.14 ' 제4연대), 위대선 중령(1948.11.25 ' 제20연대), 박기병 중령(1949.3.31.), 국 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1967, 291 ' 330쪽. 439) 보병 제11사단, 『화랑부대 전사.1, 1986, 13쪽. 440) 한림대학교아시아문화연구소, 『빨치산자료집.! 3(한국경찰대일일보고서 1), 1996, 247쪽 - 7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