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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을 자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건국준비 위원회의 함평군위원장을 하시다가 농민운동을 하셔서 목포형무소에서 9 개월 형을 살고 출소하여 집에 계시다가 할머니와 함께 고모 집에 다녀오 시던 중 열차에서 경찰에 잡혀서 엄다지서로 연행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엄다지서 부근의 주민에게서 전날 밤 10여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는 얘기를 듣고 조모께서 그 장소에 가셔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합니다."427) 당시 진상식, 진옥진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진용호는 “진상식과 진옥진이 활동을 하였는데 진옥진은 건국준비위원회 함평군 책임자였으니 지금으로 하면 함평군수 정도였다. 진옥진은 엄다지서 경찰에게 잡혀 총살되었고, 진 상식은 주변의 신고로 경찰에게 잡혔다. 그 분들은 좌익운동을 하였지만 인 명살상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428) 우치리 이재관(다-3617)의 형님 이길준도 토벌작전을 나온 군인들에게 연행 되었다. 신청언 이재관은 이길준이 연행된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 였다. “1950년 1월 30일(음력) 광영마을에서 토벌작전을 펴던 군인들이 큰형님을 연행하였습니다. 당일 저녁 군인들이 마을에 와 주민들을 집결시켰는데 형님 에게 ‘빨치산이 누구 집에서 묵고 갔는가’를 불어 형님이 빨치산을 재워준 집을 정아무개라고 하자 정아무개는 현장에서 죽이고 형님은 군인들이 데리 고 광영으로 갔는데 이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429) 사건 당시 이길준과 같은 마을 참고인 김철수는 이길준의 연행사실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길준은 전쟁 냐던 해 이른 봄에 군인들에게 연행되어 갔는데 그 뒤 소식이 없습니다. 이길준은 불갑산에 작전을 나왔던 군인들이 작전 후 마 을에 들어와서 데려갔습니다. 이길준이 끌려가던 날 마을에 정만수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전날 밤에 누군가를 재워주었다고 현장에서 총살 되었습니다. 이길준은 결혼은 하였지만 후손은 없습니다."430) 427) 신청인 진일랑 진술조서(2008.6.12.) 428) 참고인 진용호 진술녹취(2009.4.3.) 429) 신챙인 이재관 진술조서(2007.1.17.) - 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