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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1950년 음력 4월 중순경 경찰에 연행되어 단오 무렵에 시신을 찾아 왔습니다. 그 무렵 불갑산에 았던 사람들이 옷을 해오라면서 괴롭혔 습니다. 마을에 배종남이 있었는데 그 부인이 바느질을 잘하였답니다. 산사 람들이 아버지에게 배종남에게서 옷을 찾아오라고 시켜 찾아오던 중 경찰 에게 잡혔습니다. 며칠 후 모자에 흰 테두리를 두른 경찰이 아버지의 눈을 가리고 마을에 왔는데 동네에서 그 사람들을 백오대라고 불렀습니다객20) 사건 당시 계림리 주전마을에 살았던 노덕례는 김점례의 부 김광숙의 사망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다음은 노덕례의 진술이다. “김광숙은 집안 아저씨빨인데 동네에서는 김홍만이라고 불렀습니다. 당 시 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 분이 빨갱이 쪽 에서 활동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광숙이 경찰에 잡혀갔고 산 밑에서 시신을 찾아왔는데 그때가 음력 5월, 밀을 벨 무렵이었습니다. "421) 5) 나산면 용두리 정제영(다-2831)의 삼촌 정춘석은 불갑산에서 좌익 활동을 하면서 마을에 내려왔다가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정춘석 은 해보면 밀재 저수지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정춘석의 사망사실에 대한 정제영의 진술이다. “1949년 2월 16일(음력 1월 19일) 해보지서 경찰이 삼촌을 연행하여 지 서장이 도경에 보고하러 간 틈에 경찰이 불갑산 밀재 방향 아래 저수지로 끌고 가 총살하였습니다. 삼촌은 나산면 용두리 석현마을에 살았는데 해보 면 대창리 성대마을에서 주민의 밀고로 잡혔습니다. 그 사건 얼마 후 성대 마을에서 해보지서 경찰 8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삼촌의 시신은 사촌 형님 이 현장에 가셔서 수습하여 평장을 하였습니다. "422) 용두리 석현마을 정제섭은 정춘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정춘석은 당숙인 데 함평경찰서 해보지서 경찰에게 잡혀 죽었다. 이 분은 돌아가실 무렵 불갑 420) 신청인 김점례 진술조서(2008.5.3.) 421) 참고인 노덕례 통화보고(2009.9.10.) 422) 신청 인 정제 영 진술조서(2007.9.7.) - 7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