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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동준은 저의 선배로 사건이 나던 날 한 곳에 있었습니다. 한 밤 중이 었는데 빈 집이라 경찰이 집안에 인기척을 냈고 이에 놀란 이동준은 도망 하다가 경찰의 총을 맞았습니다. 저는 그 며칠 전 철봉을 하다 다리를 다 쳐 부엌에 숨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 들어온 경찰이 이동준과 함께 있었던 사람은 나오라고 하여 나갔더 니 제 뺨을 때 렸습니다."417) 월야면 외치리 정동진(다-6744)의 아버지 정재인은 월야지서 의용경찰이었 는데 함평경찰서로부터 출두요구를 받고 1950년 음력 5월 경찰서에 갔으나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 후 가족이 수소문하여 음력 8월 함평읍에서 시신을 수 습하였다. 정재인의 사망사건에 대한 정동진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월야지서 의경으로 외치리에 살았습니다. 1950년 음력 5월말 경 경찰에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여 함평경찰서에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은 음력 8월에야 찾았는데 이미 부패된 상태였습니다. 그 날 짜에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사촌형님께 들은 바에 따르면 아 버지 시신은 다른 5, 6명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418) 월야지서 의경 정재인이 함평경찰서에 연행되어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같 은 마을 참고인 정길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정재인은 당시 월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월야지서에서 의경으로 있었 습니다. 정재인은 인민군이 내려오기 직전에 함평경찰서에 출두한다고 갔 다가 죽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3살 더 적었습 니다."419) 계림리 주전마을 김점례(다-808이의 아버지 김광숙은 1950년 음력 4월 중순 경 경찰에 연행되어 단오 무렵 해보면 문장저수지 부근에서 시신을 수습하였 다. 다음은 김광숙의 연행 및 사망사실에 대한 김점례의 진술이다. 417) 참고인 김동일 진술조서(2009.6.19.) 418) 신청 인 정동진 진술조서(2008.8.7.) 419) 참고인 정길진 진술조서(2009.6.16.) - 7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