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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1949년 9월 6일(음력 윤 7월 14일) 장성군 삼서면 삼서지서로 연행되어 고 문당한 후 사망하였다. 다음은 ‘유복자’인 조유복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월야면 예덕리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는데 빨갱이를 도와주었 다고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고 1949년 9월 6일 사망하였습니다. 예덕 리가 장성군 삼서면과 인접하여, 삼서지서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서 김동선 을 찾았는데 ‘김동선은 없고 조동선이 었다’고 하자 아버지를 -연행하였습 니다. 아버지는 경찰의 고문으로 얼굴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는데’시신을 수습하여 백부의 밭에 매장하였습니다. "414) 조동선이 장성경찰서 삼서지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사실에 대하여 조동선의 아내인 이귀례는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였다. “남편은 논에서 일을 하다가 삼서지서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그날 남편 외에도 다른 사람도 지서로 연행하여 고춧가루로 고문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연행된 뒤 임신한 상태에서 날마다 지서로 밥을 날랐지만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밥을 날라서 아는데 삼서지서에서 11일 동안 이나 경찰의 고문을 받았습니다. 시댁과 따로 살았고, 제가 엄신 중이라 시 댁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하였습니다. "415) 양정리 방축마을 빈집에 또래와 함께 있었던 이영기(다-10217)의 형님 이동 준은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다음은 이영기의 진술이다. “둘째형님 이동준이 1950년 4월 8일(음력 2월 21일) 양정리 방축마을 주막에서 월야지서 경찰에게 죽었습니다. 형님의 사망소식은 함께 있었던 방봉규가 전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 형님과 방봉규, 김동일, 주막 주인 등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문 밖에서 갑자기 ‘손들어’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라서 김동일은 짚 속에 숨었으나, 형님은 부엌문을 열 고 숨으려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41이 이 사건에 대하여 사건 당시 주막에 있었지만 살아남은 참고인 김동일은 당일 414) 신청 인 조유복 통화보고(2009.3.16.) 415) 참고인 이귀례 통화보고(2α)9.3.16.) 416) 신청인 이영기 진술조서(2008.6.11.) - 7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