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page

정확히 모르지만 윤진병이 저의 삼당숙인데 제사가 정월 23일입니다."405) 1949년 음력 7월 경 대각리 오두마을 전귀임(다-8490)의 아버지 전주현은 대 각리 이장이었는데 경찰의 호출로 해보지서에 출두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은 전주현이 연행된 사건에 대한 전귀임의 진술이다. “같은 동네 정부칠의 동생이 경찰이었는데 반란군이 구장인 저의 아버지 를 시켜서 정부칠의 동생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부칠 의 집안에 이 말을 전해주었음에도 해보지서에서 출두하라고 하여 가셨는 데 그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보지서 변 순경이 반란군 두목 이채범을 찾아내라고 아버지를 문초하였음에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변 순경이 죽였 다고 합니다."406) 전귀임의 아버지 전주현이 해보지서에 연행된 사건에 대하여 당시 광암리 운암에 살았던 참고인 박용원과 김석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음은 전 주현과 관련된 박용원 · 김석주의 진술이다. “전주현은 대각리 기동에 살았는데 동네에서는 전영환으로 불렀습니다. 전쟁이전 해보지서에 연행되었는데 시신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은 구 장으로 밤에는 반란군을, 낮에는 경찰을 무마하여 주민들의 피해를 막아 주였습니다. 그 분이 입을 열면 여렷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정부칠의 동생이 정오복인데 함평경찰서 유격대원이었습니다. 정오복은 전 쟁 때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이채범은 마을에서 반란군으로 활동하였던 사 람입니다. "407) 1949년 9월 10일(음력 7월 28일) 불갑산 아래 광암리 운암마을에서 윤춘열 (다-2956)의 작은 형 윤춘식이 불갑산 작전을 다녀오던 경찰의 구타로 사망하 였다. 사건 후 윤춘열의 가족은 경찰의 소개명령으로 신광면 삼덕리 ‘새납골’ 405) 참고인 윤금중 진술조서(2α>9.6.17.); 신청인 윤석곤과 정일성, 참고인 윤금중은 사건발생 일을 일 치하여 음력 1월 24일로 진술하였으나 발생연도를 다르게 진술하였다. 그러나 『호남신문』은 사 건 발생 일을 1949년 2월 20일로 보도하였다. 신청인 정제영도 ‘정춘석이 1949년 1월 19일(음력) 창서마을에서 연행된 지 며칠 뒤 창서마을에서 경찰이 전사하였다’는 진술을 하였다. 신청인 정 제영 진술조서(2007.9.7.) 406) 신청 인 전귀 임 진술조서(2008.10.18.) 407) 참고인 김석주 · 박용원 진술조서(2009.6.18.) - 7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