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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아버지는 장에 가셨다가 술집 주인과 다툼이 있었는데 그 옆방에 경 찰이 있었다고 합니다.’갱97) 강성문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사망일자가 ‘1949년 9월 12일 백운리 351번지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전쟁 전 인 1949년 9월 17일(음력 7월 25일) 가덕 리 황금자(다-1051)의 시 아 버지 임양욱은 토벌작전을 다니던 경찰에 의하여 마을 앞에서 살해되었다. 다 음은 엄양욱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황금자의 진술이다. “시아버지는 사건이 났을 때 이장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1949년 음력 7월 25일), 유격대가 마을 앞을 통과하면서 주민들에게 밥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시아버지와 반장 양순기가 ‘아래 마을에서 밥을 하니 우리는 안 해도 되겠다’고 하였는데 경찰은 그 말을 불평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 니다. 주민들을 다시 집결시칸 경찰이 시아버지와 양순기만 도로변으로 데 려갔다고 합니다. 시신은 얼마 안 되어 가족이 수습하였습니다."398) 가덕리 가리마을에 있으면서 임양욱과 양순기가 함평경찰서 유격대에 끌려 가는 것을 목격하였던 주민 양남진은 임양욱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 이 진술하였다. “경찰 유격대가 주민을 집결시키고 임양욱을 불러내어 총살하였습니다. 임양욱은 당시 마을 이장이었습니다. 경찰이 임양욱과 양순기, 두 분을 끌 고 가 양순기는 무사하였습니다. 도로변에 저희 밭이 있었는데 경찰이 그 밭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른들은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저는 어렸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399) 3) 해보면 1949년 2월 21일(음력 1월 24일) 대창리 창서마을에 경찰이 들어와 정항수, 397) 신청 인 강춘오 진술조서(2008.4.24.) 398) 신청인 황금자 진술조서(2008.5.8.) 399) 창고인 양남진 진술조서(2009.4.24.) - 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