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page

“당시 정병선은 17살이었는데 함평에서 집으로 오다가 함평읍 하느리에 서 신광지서 경찰에게 잡혀 있어 가족이 면회를 다녔습니다. 얼마 뒤 경찰 이 월암리 우렁굴에서 살해하였고 신광지서에서 사망하였다는 연락이 왔 었습니다. 시신은 정병선의 아버지가 우렁굴에서 수습하였습니다. 그 무렵 반란군의 스파이 노릇한다고 군경이 젊은 사람들을 잡아가곤 하였는데 제 삼촌도 사망하였습니다."392) 송사리 사간동 김순성(다-7290)의 아버지 김대자(이명 김보현)는 1949년 4월 5일(음력 3월 7일) 경찰에 연행되어 삼천동 고개에서 살해되었고, 숙부 김우 현은 음력 9월경 군인들에게 삼덕리로 연행되어 공동묘지에서 살해되었다. 아 버지와 삼촌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김순성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1949년 음력 3월 7일 삼천동 고개에서 경찰에게, 막내숙부는 1949년 음력 9월경 6중대 군인들에게 삼덕리 공동묘지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당시 신광서국민학교에 다녔는데 경찰이 집에서 아버지를 연행하면서 불을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삼천동 부근에서 돌아가셔서 시신은 바로 수습하였습니다. 숙부님은 6중대 군인들이 불러내어 공산당 가입여부를 묻고 는 연행하였다고 합니다."393) 김대자 · 김우현 형제와 집안이면서 같은 동네에 거주하였던 김미섭은 두 사람의 사망 당시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대자는 집안형님으로 여순사건 다음해 봄에 사망하였습니다. 저도 그 날 김대자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어 엄청 맞았습니다. 김대자는 마을 농민 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해 가을, 김대자의 동생 김우현이 삼덕리 부근에서 군인들에게 죽었습니다. 군인들에게 연행된 김 우현이 삼덕리 부근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가서보니 살아있어 집에 데려 왔는데 얼마 후 사망하였습니다. "394) 김대자와 김우현의 제적등본에서 사망 일자를 확인한 결과 김대자의 사망 일자는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4월 28일이었고, 김우현의 사망일자는 단기 392) 참고인 최정의 진술조서(2α)9.3.5.) 393) 신청인 김순성 진술조서(2008.5.9.) 394) 참고인 김미섭 통화보고(2009.9.9.) - 7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