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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국전쟁 이전 사건 1) 손불면 학산 2리 금독마을 배정묵(다-4682)의 삼촌 배동원은 1949년 8월 7일(음력 윤 7월 초) 함평경찰서 손불지서로 연행되었다)82) 배동원의 시신은 월천리 어전 마을에서 수습하였다. 배정묵의 아버지 배동관도 1950년 7월 23일 보도연맹원 으로 나산면 넙태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83) 또 같은 마을 김복만(다-5101) 의 숙부 김병호도 1949년 8월 7일(음력 윤 7월 4일) 월천리 어전에서 살해되 어 시신을 수습하였다. 신청인 김복만의 진술이다. “당시 함평 인근에 반란군이 많았는데 밤에는 반란군이, 낮에는 경찰이 와서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주민들도 낮에는 경찰 편을 들고, 밤에는 반란군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9년 8 월 28일 낮에 함평경찰 000이 집으로 와서 숙부 김병호를 지서로 연행 하다가 월천리 어전 뒷산에서 사살하였다고 합니다."38씨 배동원과 김병호가 경찰 000에게 연행되어 월천리 어전마을 뒷산에서 살 해된데 대하여 당시 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배정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 였다. “배동원과 김병호는 1949년 여름 두 사람이 같이 죽었습니다. 김복만이 김병호의 제사를 음력 7월 4일(양력 8월 27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좌익 배재만이 학산리에 산다는 것만으로 주민은 경찰의 의심을 받았습니 다. 배종수의 동생 배용길과 김병호의 큰형 김갑조가 월천리 어전마을에서 시신을 수습하였는데 저도 같이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385) 죽암리 죽림 장정순(다-4687)의 아버지 장동환은 1949년 9월 30일(음력 8월 382) 신청인 배정묵은 배동원의 사망일이 1950년 7월초(배동관이 보도연맹원으로 사망하기 보름 전)라 고 하였으나 참고인 배정문은 1949년 8월이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6.10.) 383) 신청 인 배정묵 진술조서(2008.7.5.); r전라남도 국민보도연맹사건J 3(함평 · 해남 • 완도군) 진실규 명 · 불능결정(2009.8.25.) 384) 신청 인 김복만 진술조서(2α>9.2.12.) 385)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6.10.) - 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