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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과는 같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김상균은 인민군 점령기에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활동은 하였습니다. 제가 좌익들에게 노동당 사무실로 장혀 가 언민군 입대를 강요받았을 때 김상균의 도움으로 10일 정도 구금되었다 가 석방된 일이 있었습니다. 김상균은 광복이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 하였습니다. 전쟁 후에는 좌익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고 함평에 피난 중 경 찰에게 연행되어 살해되었다고 들었습니다."37키 엄다면 신계리 사장촌 정석진(다-4321)의 형 정판진은 인민군 점령기 마을 인민위원장이었다. 이 때문에 수복 이후 정석진의 아버지 정맹순과 형은 고모 집에 피신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다음은 정석진의 진술이다. “아버지와 형님은 나주 다시면 고모 집에서 1950년 12월 21일 경찰에게 연행되었습니다. 형님은 전쟁 후 고향에 내려왔다가 마을에서 인민위원장 을 맡으라고 하여 맡았었습니다. 사건 후 아버지와 형님의 행방을 수소문 하여 설 무렵 당숙이 연락을 받고 어머니, 외숙과 함께 엄다지서 부근 하 천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함평읍 만홍리에 매장하였습니다."380) 엄다면 신계리 사장촌 정맹순 · 판진 부자가 경찰에 연행되어 사망한 것과 관련하여 같은 마을에 살았던 정영일은 연행과정과 마을 상황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진술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정판진은 마을에 내려와 인민위원장으로 활동하였습 니다. 그런데 얼마 뒤 어떻게 되었는지 정판진 부자가 경찰에게 구타당하 고 없어졌는데 경찰이 밤중에 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무렵 경찰이 밤 중에 와서 주민들을 연행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 후 정판진 부자 는 동네의 50대 주민 몇 사람과 함께 학다리 둑에서 죽었습니다. "381) 379) 참고인 이영조 진술조서(2009.4.23.) 38이 신청인 정석진 진술조서(2008.6.25.) 381) 참고인 정영일 진술녹취(2009.4.23.) - 7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