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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경찰에 연행되어 대창리 쌍구룡에서 살해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정숙의 진술이다. “저는 당시 4살이어서 사건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어머 니, 고모, 여동생과 같이 산내리 집에 있었습니다. 고모님께서 할아버지의 제사를 음력 5월 11일에 지내고 있어서 사망하신 날짜를 5월 12일로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동네 어른들이 수습하여 산내리에 모셨습니 다."373) 당시 상곡리에 거주하며 경찰이 이계병(이명 이계춘)을 연행하여 총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 윤기병의 진술이다. “이계병을 동네에서는 이계춘이라고 불렀습니다. 월야면 영윌리에서 오 두치 계곡 빈집으로 이사와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좌익 활동 을 하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경찰이 잡아가는 것을 쌍구룡 주막에서 술을 마시면서 보았는데, 얼마 뒤 주막 옆 공동묘지에서 총살하였습니다. 경찰은 세 명이었는데 지서 주엄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시신은 친척이 수습하여 송산마을에 매장하였습니다."374) 다)월야면 1950년 11월 28일(음력 10월 19일) 용암리 신성마을에 경찰이 들어와 주민 들을 집결시키고 김길호(다-3619)의 아버지 김동열 등을 연행하여 다음날 외 치재에서 살해하였다. 사건에 대한 김길호의 진술이다. “김두원375)의 사위가 좌익 활동을 하였는데, 경찰이 그 사람을 잡으러 왔 다가 없자 아버지, 김두원, 장싹쇄, 그리고 김두원과 인척인 박화선을 잡아 갔는데 박화선은 남편대신 잡혀갔습니다. 아버지는 진다리 정미소에서 방 아를 찔다가 잡혀갔습니다. 이날 연행된 분 중 박화선을 뺀 나머지 분들은 373) 신청인 이정숙 진술조서(2008.6.11) 374) 참고인 윤기병 진술조서(2008.8.22.) 375) 김두원과 장싹쇄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김두원의 경우 함평군 월야변에 제적등본 발급을 요 청하였으나 김두원의 제적등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회신이 왔으며 장싹쇄의 경우 후손이 없다 는 김길호의 진술에 따라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월야면-10397 - 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