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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으로, 지서에서 아버지께 장작을 해오라고 하여 형님이 대신 지서에 가 져다주고 오다 나산지서로 잡혀갔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함평경찰서로 이송 도중 구산리 상구동 앞에서 총살하였습니다. 형님과 안기남, 김해용이 돌아가 셨습니다. 전날 월봉리 안영마을 뒷산에서 봉횟불이 올랐던 것 때문에 기동 대가 지방폭도를 잡으러 왔다가 연행하였습니다.’갱61) 안기남, 김해용, 모우종 등과 같은 마을에서 살았으나 월봉리 안영동으로 소 개를 나갔던 참고인 정관욱은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해용, 안기남, 모우종은 모두 이 마을에 살았습니다. 경찰의 명령으 로 월봉리 관동으로 소개를 나갔는데, 지서에서 밸감용 나무를 가져오라 고 하여 갔다 오다가 경찰에게 연행되었습니다. 나무를 가져다주고 석유 를 사가지고 좁은 길로 왔는데 석유를 봉화를 피우는데 사용할 것으로 봤 던 것 같습니다. 구산동 모퉁이에서 죽였는데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나 이가 김해용은 1살 적었고, 안기남은 당시 40대였고, 모우종은 1살 많았습 니다."362) 하루 전인 1950년 12월 27일(음력 11월 19일) 월봉리 안영동 도로변에 살았 던 김영휴(미신청)의 아버지 김복수도 집안에 들어온 경찰에 연행되었다. 다 음은 김영휴의 진술이다. “저희 가족은 고모부 정석주가 월봉리 안영동으로 나와서 살자고 하여 안 영동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옥이 도로변에 있었습니다. 음력 11월 19 일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집안 식구들은 방안에 있었고 아버지는 마당에 계셨 는데 경찰이 잠깐 어디를 가보자면서 데려갔다고 합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광영마을 앞 삼거리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고 어머니께 들었습니다걱63) 김복수의 희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김경수는 “당시 나산면 월봉리 안영동 에 살았는데 나산에 군인들이 들어오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곽원길, 이기옥, 노세창, 정종하, 김복수364)가 군인들에게 연행되어 2, 3뼈1 떨어진 천주봉에서, 361) 신청 인 모종수 진술조서(2008.6.13.) 362) 참고인 정관욱 진술조서(2009.6.15.) 363) 참고인 김영휴 진술조서(2007.12.8.) 364) 곽원길, 이기옥, 노세창, 정종하, 김복수는 1950.10.28. 나산면 천주봉에서 국꾼에게 삼해되었다. - 7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