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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음력 11월 11일) 김맹수(다-3628)의 아버지 김영호도 경찰에 연행되어 강운 리와 백호리 사이 공동묘지에서 경찰에 살해되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신청인 김맹수의 진술이다. “어머니, 할머니께 들었는데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피신을 가셨습니다. 피신 중 마을이 잠잠해지니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셨는데, 이를 알고 경찰 밑 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버지를 잡아다 강운리에서 백호리로 넘어가는 공동묘 지 부근에서 총살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시신은 집안일을 하던 곽원용이 수습해 왔다고 합니 다."344) 김영호가 백호리 공동묘지 부근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참고 인 김진배는 “김영호도 20대 후반이셨는데, 000의 손가락질 때문에 사망하 였다. 시신은 곽원용이라고 이웃에 살았던 분이 수습하여 임시로 매장하였다 가 강운리 송산마을 옆 ‘거무네’에 이장하였다”고 진술하였다)45) 덕산리 아차마을 김만수(다-3365), 이순화(다-3964) 가족은 1951년 1월 6일 (음력 11월 29일) 용성리 금성동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신청인 이순화는 1955년 출생으로 사건 당시가 출생 전이었고 사건의 내용은 나중에 주변에서 듣고 알게 되었다. 다음은 이 사건에 대한 김만수와 이순화의 진술이다. “형 김만석이 좌익 활동을 하여서 어머니 이발산 · 형수 박 씨 · 조카 김 O O 등 3명 이 1951년 1월 6일(음 1950년 11월 29일) 덕산리 아차동에서, 대동 지서 의용경찰 윤필중, 노병선, 여차현, 정재수와 형사 000 등에게 연행되 어 3일 후 용성리 금성동 모퉁이에서 총살되었습니다. 경찰과 의용경찰 10명 이 마을을 둘러싸고 총과 죽창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이형순, 정영채 가족까지 11명을 지서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는데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346) “할머니, 백모 박동순, 미혼이었던 중부 이이순, 사촌오빠 2명이 사망하 였습니다. 덕산리 아차마을에 살았는데 1951년 1월 3일(음력 1950년 11월 26일) 함평경찰서 대동지서 경찰 000 , 000 등이 아차마을 주민을 마을 앞에 집결시킨 후 14명을 대동지서로 끌고 가 3일 후인 1월 6일 용성리 금 344) 신청인 김맹수 진술조서(2008.5.22.) 345) 참고인 김진배 진술조서(2009.4.2.) 346) ~l첫인 킴따수 진술조서(2007.11.2.) - 7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