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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312) 김종수31기 둥 5명을 불러내어 원남 방향으로 데려갔고 남은 주민 들은 돌려보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내일 신광지서 쪽으로 이사를 하라’고 한 후 마을에 불을 지르고 물러갔습니다."314) 원산1리 원남마을 서영순(다-1531)은 시당숙 전무남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스무 살에 시집을 와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께 들었는데 돌아가신 시당숙은 해보 관립학교를 다닌 분인데, 경찰이 마을에 와서 젊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죽일 때 함께 죽였다고 들었다. 사건 이후에 경찰이 다시 왔는데 그때는 부역 여부만 묻고 돌아갔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진술하였다.315) 신청인 김영화(다-2235)는 숙부 김수복에 관하여 “숙부는 김기병으로도 불렸 는데 경찰이 원산리 원남마을 하천에서 죽였다.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누구 누구 나오라’고 지목하여 원남마을 쪽으로 데려가다 총살하였다. 그 무렵 빨 치산이 3, 4일에 한 번씩 마을에 내려와 식량 등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 다”고 진술하였다.31이 신청인 천동연(다-2295)은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잘 모르지만 큰집에서 아버지에 관하여 들은 내용은, 아버지는 목수로 면사무소 옆에 살았는데 원산리 덕동마을에 가셨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다고 들었다. 경찰이 주민들을 동네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나갔는데 아버지가 조금 늦었다. 경찰이 이 때문에 아버지를 끌고 갔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317) 또 김종수의 양자로 입양된 김영이(미신청)는 “생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직접 들었는데 양부 김종수는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동네에서 불러낸 4 명과 함께 원남마을 앞으로 끌고 가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생부께 들었다”고 진술하였다.318) 311) 신청인 김영화(다-2235)의 숙부 312) 신청인 천동연(다-2295)의 아버지 313) 김종수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김영태(金永台)로 기재되어 있었다. 참고인 김 영이 통화보고(2α)9.8죄.) 314) “학동 김종수는 조직부장, 전무남은 덕동마을 세포위원장, 김기병은 조직부장, 천기순은 목수로 면소재지에서 덕동까지 왔다고 경찰이 연행하였습니다" 신청인 이춘만 진술조서(2008.5.7.) 315) 신청 인 서 영순 진술조서(2008.4.21.) 316) 신청인 김영화 진술조서(2008.4.22.) 317) 신청 인 천동연 진술조서(2008.3.4.) - 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