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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큰 형수와 함께 직접 시신을 찾으러 가 서 보니 큰형님과 이영옥의 손이 뒤로 포박당한 채 새끼로 묶여 있었습니 다. 큰형님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이영옥도 총을 맞은 상태로 형님 아래에 있었습니다. 고랑에 12구의 시신이 있었는데 그 중 큰형님과 이영옥만 우 리 마을 사람이 었습니 다."289) 같은 마을에 살았던 정화순(다-2616)의 오빠 정천석 등 가족은 1950년 12월 12일 경찰의 작전 이후 복흥리 복치마을로 소개를 나왔다. 어머니와 오빠는 매일같이 계천리 경찰고지로 울력을 다녔는데 12월 22일(음력 11월 14일) 아 침 대창부대가 오빠를 찾자, 울력에서 돌아온 후 출두하였다. 다음은 정화순 의 진술이다. “1950년 12월 22일(음력 11월 14일) 아침밥을 짓고 있는데 대창을 든 두 사 람이 와서 집주인과 오빠를 찾았습니다. 신광고지가 불타 오빠는 매일같이 어머니와 울력을 다녔습니다. 오빠가 울력에서 돌아오자 큰아버지가 오빠에 게 ‘죄도 없으니 안 가면 이상하다. 대창부대가 머무는 이장 집에 찾아가보 라’고 하여 갔었습니다. 오빠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갔던 것입니다.’갖90) 대창부대가 오빠를 찾은 이유에 대하여 신청인 정화순은 “마을에 심천택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냉천마을에서 반란군을 도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경찰 조사를 받았다.291) 심천택이 조사받을 때 오빠 이름을 불러, 대창부대가 오빠를 지서로 연행하여 우렁굴에서 총살하였다”고 진술하였다.292) 정천석의 사망과정에 대하여 같은 마을 심연옥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정천석은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경찰의 소개명령에 복홍리 복치마을로 소개를 나가 심백술의 집에 있었다고 합니다. 냉천마을에 돌아 왔을 때 들었는데 정천석은 경찰인가 소방대원인가는 모르겠는데 경찰 편 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연행되어 우렁굴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293) 289) 참고인 심 태수 진술조서(2이:>9.3.31.) 290) 신청 인 정화순 진술조서(2008.5.19.) 291) 냉천마을에 경찰 보조조직에 심천택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동네에 모여 이야기를 하던 중 경찰 이 내용을 엿들었습니다. 경찰이 심천택을 잡아다 같이 었던 사람을 불으라고 하여 5, 6명 정도 이름을 말하였는데 이들을 모두 우렁굴에서 죽였습니다. 신청 인 정구연 진술조서(2008.3죄.) 292) 신청 인 정화순 진술조서(2008.5.19.) 293) 참고인 심연옥 진술조서(2009.4.5.) - 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