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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리 사간동 김정기(다-2306)의 숙부 김관섭도 1950년 음력 11월 중순 손 불면 북성리 승선마을 앞에서 경찰에 의하여 주포지서로 연행되었다. 김관업 의 연행사실에 대하여 송사리 주민 김채섭은 “김관섭은 사촌동생인데 1950년 음력 11월 중순경 경찰에게 잡혀 주포까지 끌려가 경찰에게 살해되어 시신은 바다에 던져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280) 나)통정리 동정리 냉천마을 심태수(다-3645)의 아버지 섬의대, 섬승욱(다-7289)의 할아 버지 심의석, 심기달(다-10796)의 아버지 심현택,281) 그리고 정병조는 1950년 12월 12일 옆 동네인 신여마을 이병표의 집에 놀러 갔다. 그때 작전을 들어온 경찰이 정병조를 제외한 3명을 마을 뒤에서 살해하였다. 다음은 섬태수의 진 술이다. “아버지는 한 동네 심의석, 심현택, 정병조 둥과 같이 신여마을에 가셔셔 이병표의 집에 계셨는데 경찰이 주민들과 같이 당산나무 아래에 집결시켰 습니다. 경찰이 아버지 일행에게 ‘어느 마을에 사느냐’고 불어 ‘맹천’이라 고 대답하자 정병조를 제외한 3명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살해하였습니다. 정병조는 경찰 중에 처남이 있어 생환하였다고 합니다. 그날 신여마을이 불타고 주민들은 소개되었습니다."282) 심의대, 심의석, 심현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신여마을에 살았던 주민 임영 수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심태수의 아버지 심의대는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마을에 놀 러왔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심의대, 심의석, 섬현택 등 3분이 이병 표의 집에 오셨는데, 경찰이 그 분들을 연행하여 노씨 묘지(현재 저수지임) 에서 총살하였습니다. 경찰은 그날 노치식의 좌익 활동을 빌미로 노치식의 아버지 노동윤283)을 먼저 죽였습니다. 심의대의 아들 심택용도 그 뒤 경찰 280)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281) 심현택의 아들 심기달은 다른 주민을 통하여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을 하였으나 진술을 거부하여 조사할 수 없었다. 282) 신청인 심태수 진술조서(2008.4.24.) 283) 동정리 신여마을 노치식의 아버지 노동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함평군 신팔뽕웬 행적등콸 - 725 -